담벼락 옆에는 시궁창이 있어
가끔 시궁쥐도 돌아다니고
어디에서 온지 모를 포대도 버려졌다.
그곳에 살며 가위도 자주 눌렸지만
그 환경보다 힘겨웠었던 건
아버지의 가부장적 모습이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사랑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한 채
우리를 가졌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어머니를 보이는 건 안 된다는 아버지
집에서 울음을 시작했던 내게 아버지는
무척이나 엄하고 무뚝뚝한 분이셨다.
그러는 어느 날
끓는 물에 왼 발이 데였을 때
갯가에서 내 발을 식히려다
유리에 베여 손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 채로 나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내달리셨다.
아버지 등으로 흐르는 시큼한 땀과
허벅지로 스미는 아버지의 붉은 피
아버지는 포옹도
사랑한다는 말도 몰랐던 분이셨지만
가빠진 숨에서 느껴지는 단내와
허벅지를 적셔오던 끈적한 피는
무척이나 달콤한 기억이라서
아버지가 가끔 미울 때마다 꺼내 맡는
나만의 사향(麝香)으로
성장기 내내 나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