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기구를 교체한 후 화장실과 주방 문 위쪽에 커튼레일을 달았다. 원룸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그 문들을 커튼으로 가려서 안정감을 주고, 그 커튼을 등지고 앉을 수 있게 책상을 놓을 생각이었다. 깔끔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줄 커튼은 초록색과 흰색으로, 바닥에는 파란색 타일카펫을 깔기로 했다. 노란색과 파란색, 초록색, 그리고 짙은 월넛색의 가구들. 노란 의자를 중심으로 한 선명한 색깔만큼 내 마음속에도 영감이 잘 떠올라 주는 그런 방이 되길 바랐다. 노란 의자와 몇 개의 가구들은 초반에 남동생의 도움으로 작업실로 날라왔는데 4층까지 가구를 나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커튼이나 타일 카펫, 책장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는데, 4층 작업실까지 직접 배달을 해주는 인터넷 배송 시스템의 편리함에 새삼 너무 감사했다. 주문한 타일카펫은 밑면이 밀리지 않게 고무패드로 되어 있어서 그 무게가 상당했다. 배송된 박스를 들어보니 20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것 같은 무게여서 배송 기사님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커피 쿠폰과 함께 감사 문자를 보내드렸다. 앞으로도 배송받게 될 무거운 택배가 많을 것이기에.
작업실에 둘 책상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정해둔 상태였고, 그곳에 들어갈 적당한 사이즈의 가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일단 당근마켓에 올라온 가구들을 살펴봤다. 원목 상태가 좋아 보이는 책상들 중에서 디자인이 맘에 쏙 드는 것들을 계속 찾아두고 있었다. 하나씩 약속을 잡고 차로 옮겨서 집에 일단 가져다 두었다. 다음 가구들을 당근 거래 하려면 일단 트렁크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 가구들이 어느 정도 모인 어느 주말, 남편과 아들에게 가구를 함께 날라달라고 부탁을 했다. 남편은 체력적으로 무거운 걸 들기가 힘든 환자였기에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키도 아빠보다 훨씬 커진 아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셋이서 책상과 의자, 책장들을 여러 번에 나누어서 낑낑 대며 4층으로 날랐다. 아들은 내 작업실에 처음 와보는 것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엄마의 작업실에 처음 와 본 아들은 방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도 나중에 혼자 살면 이렇게 방을 꾸며야겠다고 했다.
복층 위 다락에 둘 원목 책장도 당근에서 구해서 직접 페인팅을 했다. 2단으로 되어 있던 것을 분리해서 배치하니 다락 높이에 딱 맞게 안쪽까지 들어갔다. 한쪽에는 작고 귀여운 책상도 두었다. 아래층에 둘 책장은 조립식 가구로 인터넷 배송을 시켰다. 가구 조립과 배치가 어느 정도 끝이 나고 책을 날라올 차례였다. 집에서 작업실로 가지고 올 책들을 추리면서 아들 방에 있던 책들을 보따리에 싸기 시작했더니 지켜보던 아들이 한마디 한다.
“그 책 다 가지고 가게? 그럼 나는?”
“너 어차피 공부하느라고 집에 있는 책 많이 못 읽잖아. 읽고 싶은 책 한 권씩 사서 읽어.”
일단 그렇게 달래 두고 작업실로 책 보따리를 싸서 나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내 책들을 읽기 시작한 지는 몇 해 되어서 이제는 내 책들 중 세계문학전집들은 아예 아들 방 책꽂이에 꽂아두고 지내던 터였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면서 많은 책을 버려야 했을 때 누구보다 아까워했던 사람도 아들이었다. 이제 엄마가 작업실을 얻어서 남은 책들마저 다 가지고 가겠다고 하니 많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즈음부터 사춘기가 와서 늘 방문을 닫고 살고 세상 일에 시큰둥하던 아이가 자신의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며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아이가 여전히 책에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게 느껴졌다.
아들은 임신 8개월 만에 이른둥이로 태어났다. 폐포가 다 펴지지도 않은 채로 태어나서 중환자실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자라는 동안 또래보다 약하고 예민한 기질로 애를 태웠던 아이였다. 분리불안이 심해진 아이를 더는 어린이집에 떼어 놓을 수 없어서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때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처음 아이를 키워보는 서툰 부모의 불안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더 책 읽기에 매달렸다.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동안에는 아이의 울음도, 나의 불안도 다 사라졌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서 만화책과 책에 푹 빠져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곳이 서툰 부모와 서툰 아이가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라 믿었다.
작업실에서 책 정리를 하다가 불쑥 다시 아들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일단 이과를 갔던 아들은 뒤늦게 적성이 아님을 깨닫고 3학년 때에는 다시 문과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터였다. 망쳐버린 학생부와 입시를 생각하며 자신의 결정이 늦었다는 후회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인생에 늦은 때도 없고, 잘못된 선택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지금도 이렇게 엄마 꿈을 찾기 위해서 방을 만들지 않느냐고. 그때 네가 그런 선택을 했고 경험했기에 더 확실하게 알게 된 것들이 생겼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자신이 인생에서 하는 모든 선택들은 옳은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아들의 괴로움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런 나이였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불안이 커지고, 지금의 모든 결정이 너무나 크고 중대하게 느껴지는 나이.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는 아들이었지만, 한편으로 나는 아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 외롭게 기억할까 봐 걱정하던 차였다.
마침 아들이 다니던 스터디카페 월 결제일이 다 되었다며 새롭게 결제를 해달라고 말을 걸어왔다.
“아들, 스터디카페 새로 결제하는 대신에 엄마 작업실 같이 쓸래?”
“엄마 혼자만의 방으로, 작업실로 쓴다며?”
어차피 내가 작업실에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호박마차가 변하기 전에 숨 가쁘게 돌아오는 신데렐라처럼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너 학교 끝나는 시간이면 어차피 엄마는 작업실 안 쓰는 시간이야. 괜찮아. 너도 혼자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집보다는 조용할 테니까 거기에서 공부도 하는 거 어때?”
“그럼 나야 좋지”
아들은 생각보다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당시 아들은 스터디카페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자기만 늦었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고 집중을 못할 때라서 작업실에서 혼자 하는 공부를 더 편안하게 느꼈던 것도 같다. 나는 사실 아들을 더 품어주고 싶었다. 이미 키가 180센티미터도 넘게 자라 버려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아이도 아니고, 안기려 하지도 않지만. 입시를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길 바랐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이 방이,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때 이 노란 방에서 보냈던 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렇게 아들은 이 방에서 김광석을 듣고, 카프카를 읽으며 십 대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