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는 현실

by 달숲

작업실 꾸미기를 마치고, 집안에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일들로 분주한 나날 속에 작업실로 책 꾸러미를 조금씩 나르던 작년 겨울이었다. ㅇㅈ언니의 부고가 날아왔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간간히 언니가 올려주는 인스타 일기를 보고 알고는 있었다. 인스타 일기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전화 연결도 되지 않은 지 여러 날이 되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적 같은 퇴원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언니가 병마와 싸워온 지 2년. 예상을 전혀 못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언니를 보내고 한동안 작업실에 가지 못했다. 갈 힘이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작업실을 만들걸. 왜 그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혹은 작업실 꾸민다고 빠져 있을 시간에 언니한테 더 많이 다녀올걸. 가서 싱잉볼도 더 쳐주고 언니 손도 더 잡아줄걸. 후회와 자책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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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떠나기 1년 전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언니 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언니 집 바로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거실과 안방 창 가득 산이 보였다. 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고 난 후, 자연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산책도 자주 하려고 선택한 집이었다. 눈 내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병풍처럼 옆에 두고 언니와 마주보고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서로 늘 고민 중인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을 하고도 내 생계를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되는 성취를 통해 내 쓸모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우리의 오랜 고민이자 대화 주제였다. 건강해야만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어쩌면 이제는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욕심인지도 몰랐다. 이미 이사를 오면서 많은 것을 내려놓은 언니였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에 대한 고민을 하곤 했다. 나는 그런 언니의 마음이 너무 깊이 공감되었다. 누군가는 다 내려놓고 건강만 챙기라고 했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언니에게는 건강해져야 할 이유가, 삶의 의미가 더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언니가 즐거운 일을 찾길 바랐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되지 않을까, 그 즐거움이 언니의 두려움을 잠시라도 잊게 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약이 되길 바랐다. 즐거운 일을 하면서도 돈이 되는 일, 그런 일을 찾으면 더없이 좋겠다 싶었다. 언니가 평생을 좋아했던 책. 언니는 투병중에도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좋아하면서 돈도 되는 행복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건 나를 위한 고민이기도 했다.

"언니 유튜브 해보는 거 어때요?"

"유튜브 찍을 컨텐츠가 없어.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산책이랑 책 읽는 것밖에는 없는데?"

"언니가 하는 책읽기랑 산책을 컨텐츠로 유튜브를 하면 되죠. 일단 재미로 시작해 보는 거 어때요?"

그날 집에 돌아오고 나서 유튜브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책읽기와 산책을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을 찾고, 그 중에서 언니가 시도해볼 만한 편안한 느낌의 채널들을 카톡으로 공유했다. 유튜브로 돈은 어떻게 버는 걸까. 유튜브 잘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수업들도 찾아보았다. 이런 공부까지 해보라고 권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일단 유튜브 채널이 잘 되면 돈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단이 열려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는 분야의 상단이 막혀 있지 않은 일. 그런 시작만으로도 활력과 희망이 생기는 게 아닐까. 언니도 찬찬히 살펴보고 생각을 더 해보겠다고 했다.


얼마 뒤 언니는 유튜브를 시작하는 대신에 그동안 브런치에 써오던 글을 정리해서 전자책으로 발간하기로 했다. 따뜻한 봄날에 언니의 첫 책 <뒤늦게 배운 수영>이 나왔다. 오래 전 언니는 허리디스크가 터진 후 통증 치료를 받으며 수영을 시작했었다. 고질적인 허리병을 다스리며 점차 건강을 찾아가던 날들의 기록을 언니는 그렇게 새로운 병과 싸우며 세상에 내보냈다. 책에는 언니가 느꼈던 아픔이나 힘겨움 같은 감정들이 더 많이 덜어내져 있었다. 책 속 묵묵히 팔을 돌리고 발차기를 하는 몸짓이 현재 언니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다. 가족을 챙기고 집을 치우고 밥을 차려 먹고, 책을 읽고 글을 쓰던 그런 하루하루. 휴직을 하겠다는 남편도 만류하고, 주변 사람들이나 아이조차 엄마가 아픈 걸 모르게, 평소와 똑같은 날들을 살기를 원했었다.


나는 전부터 언니를 루틴의 여왕이라고 부르곤 했다. 수영과 달리기를 열심히 하며 일상 루틴들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지인들의 대소사나 안부도 꼼꼼하게 챙겼다. 그런 꼼꼼함과 일상 루틴들은 이제와 돌이켜보니 사실 다 사랑이었다. 사랑 없는 돌봄이, 챙김이 어찌 가능할까.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거나 살가운 표현은 못하는 언니였지만 연락이 뜸해지면 주기적으로 전화 걸어 안부를 물어봐 주던 건 항상 언니가 먼저였다. 그게 다 다정이고 사랑이었다는 걸 언니를 만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늘 강해보이고 단단해보이기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언니가 아프고 난 후 내가 먼저 연락하고 챙기기 시작하니 비로소 언니도 다정과 사랑을 너무나 원했던 마음 여린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지키려 애썼던 그 몸짓처럼 묵묵히 수영을 해나가는 언니의 모습이 담긴 책만이 이제 세상에 남았다.


내게 무슨 사정이 있든지 말든지, 작업실을 제대로 썼든지 못 썼든지 월세를 내야 할 날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나마 아들이라도 저녁에 작업실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스터디 카페 결제해줄 돈으로 작업실 월세를 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어차피 둘째 아이 겨울방학이니 내게 작업실을 가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도 생각했다. 언니가 알면 월세는 어떻게 낼 거냐고 야단할텐데. 그렇게 말해줄 언니는 이제 세상에 없었다. 슬픔을 이불처럼 덮고 겨울 내내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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