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작업실 계약을 마치고 노란 의자 생각이 제일 먼저 났을 때, 이케아에 바로 달려가는 대신 당근마켓에서 구해보기로 했다. 예쁘긴 하지만 자리를 꽤 차지하는 디자인이기에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되파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작업실을 꾸미는 기간을 넉넉하게 잡았으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찾다 보면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우리 동네 당근마켓에는 보이지 않아, 다른 지역에 사는 친한 언니들에게도 모델명을 알려주며 검색을 부탁했다. 키워드 알람 등록을 해 놓고 나중에라도 판매 물품이 올라오면 알려 달라고. 그런데 일산에 사는 언니가 당근에 올라온 게 있다고 바로 카톡을 보내줬다. ‘벌써?’ 같은 모델명, 색상도 정확히 노란색. 다른 사람에게 선수를 빼앗기기 전에 바로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날이 되어 차를 몰고 일산으로 갔다. 큰 덩치의 의자는 SUV 차량 뒷좌석을 접어 확장한 트렁크 안에 꽉 차게 겨우 들어갔다. 트렁크에 의자를 실어두고 나서야 이 무거운 의자를 4층 작업실에 어떻게 올리지 고민이 되었다. ‘동생에게 부탁을 해볼까? 아님 내가 한 층씩 업고 나를까?’ 늘 이런 식이다. 일단 마음이 동하면 일단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것의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비록 실패하더라도 해보고 난 후 얻는 경험이 훨씬 값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달려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게 나였다. 트렁크 안에 노란 의자를 싣고 달리며 내 마음은 벌써 다음 만들기 단계로 달려가고 있었다.
천장에 달려 있는 형광등을 떼고 조명 기구를 바꾸려면 먼지와 가루가 많이 날릴 수 있기 때문에 바닥을 깔기 전에 조명 교체 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하루 날을 잡아서 조명을 사러 이케아로 달려갔다. 이케아에는 예쁜 조명 기구들도 많지만, 스마트 전구와 그 전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스마트 리모컨도 판다. 작업실 곳곳에 스탠드 조명같은 부분 조명을 놓을 예정이라 그 조명들을 한꺼번에 켜고 끌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조명 기구와 스마트 조명 세트를 이케아에 가서 한꺼번에 사 왔다. 이제 조명 기구를 바꿔야 했는데, 이 정도 전기 작업은 사람을 쓰지 않고 내가 직접 한다. 남편이 어떤 물건이든 만지기만 하면 고장을 내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보니, 20년에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나의 집수리 능력은 날로 향상되었다. 문고리 교체, 커튼 봉이나 레일 설치, 조명 기구 교체나 위치 변경, 유리창 시트지 작업, 셀프 벽지 시공이나 페인팅, 반제품 가구 조립 등 그 항목도 다양하다. 사실 살림을 하다 보면 집안에서 필요한 만들기 기술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에 십자드라이버 정도의 간단한 공구밖에 없던 신혼 시절에 반제품 가구를 조립하느라 낑낑거렸던 적이 있다. 옆에서 보기만 하고 도와주지도 않느냐며 투덜거렸더니 다음날인가 남편이 박스 하나를 안방 입구에 보란 듯이 가져다 두고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이게 뭐야?”
“선물이야. 자기가 좋아할 거야.”
남편은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옆에 서서 생글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박스를 들여다보고 나는 그야말로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보쉬에서 나온 미니 전동 드릴이었다. 직접 공구를 들고 집수리를 맡아주는 대신에 아내에게 전동 드릴을 선물해 주는 남자. 나는 이런 남자와 살고 있다. 맥가이버라는 칭찬과 응원을 받으며. 그 뒤로도 쭉 그 드릴의 주인은 나다. 나와 오랜 세월 크고 작은 집수리의 여정을 함께 한 미니 드릴을 들고 이번엔 작업실로 향했다.
목디스크가 있어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작업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기존의 형광등 조명 기구를 떼어내서 조명만 바꿔 다는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전기 작업은 늘 조마조마하다. 두꺼비집의 차단기는 내렸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차단기가 내려진 어두운 작업실에는 가구들이 만들어낸 그늘만이 생기없이 늘어져 있었다. 차단기를 내려놓고 하는 일이니 에어컨도 켤 수 없었고, 자연광이 들어오는 시간에만 작업이 가능하니 늦은 저녁에야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조수 없이 혼자 작업을 하려니 공구나 나사가 필요할 때마다 의자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땀이 금세 줄줄 흘렀다. 한꺼번에 작업을 몰아서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하루에 한두 시간씩, 즐거울 만큼만 일을 하기로 했다. 복층 천장에는 환기를 위한 실링팬 겸 조명을 설치하고, 화장실과 주방 쪽에는 커튼레일을 설치해서 커튼으로 공간을 나눌 생각이었다. 하루 분량의 작업이 끝나면 의자에 앉아 쉬면서 작업실을 어떻게 고칠지, 어떤 색을 입힐지 상상했다. 이런저런 구상을 하고 책도 읽다가 오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모처럼 찾아온 즐거운 만들기 시간.
조명을 교체한 후 내렸던 차단기를 올렸다. 빛이 없을 때와는 방의 모든 사물이 다르게 보였다. 책상도 의자도, 노란 쇼파도 다시 생기를 찾고 더 매력 넘치고 예뻐보였다. 사물들은 모두 그대로이고 빛이 바뀌었을 뿐인데 마법이라도 일어난 듯 모두 다른 존재로 거듭나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이럴 것이다. 내가 어떤 시각으로, 어떤 빛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궁금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켜진 그 빛이. 그리고 그 빛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지. 우리가 각자 가진 빛으로 바라본 이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이야기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