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따리를 싸다

by 달숲

노란 의자를 제일 먼저 장만해서 방 한가운데 두고 처음에는 그저 가만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그 시간 자체를 누렸다.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간 사이,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려두고 집안 살림을 하던 사이, 퇴근한 남편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잠시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 있는 사이, 수시로 작업실로 달려와 일단 노란 의자에 몸을 파 묻었다. 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비로소 내 시간의 주인이 된 듯,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길게 늘어나는 듯한 느낌, 나만의 시공간에 빠져드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현실에서의 시간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줬던 건 몰입의 힘이었을 것이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는 힘. 이 방에는 ‘엄마, 이것 좀 봐봐, 엄마, 엄마…’하는 작은 아이의 목소리도, 세탁을 마쳤으니 이제 건조기를 돌릴 차례라고 알려주는 세탁기의 알림음도, 야간 자율학습을 하기 전 집에 들러 현관문을 엶과 동시에 저녁 뭐야? 묻는 아들의 목소리도 없었다.


‘이제 여기에서 뭘 할까?’

19호실로 가서 머물기만 하다 오던 수전처럼 내 집과 가정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난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직장에서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뿌듯함과 피곤함을 동시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나의 가정으로 기쁘게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매일 부대끼는 가족들과 돌봄의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에너지를 갖고 싶었다.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일단은 이곳을 나를 위한 충전소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는 나를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고, 나다워지는 자유를 느끼는가.’

노란 의자에 앉아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해질녘을 싫어했다.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리비아로 돈을 벌러 떠나 3년 동안 집을 비웠는데,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주말도 없이 돈을 벌러 나가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와 엄마, 할머니, 남동생과 저녁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엄마는 시어머니를 불편해해 대화가 거의 없었고 늘 안방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부업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집에 들어와서는 자기 전까지 내내 거실에서 멍하니 만화를 보곤 했다. 도시의 외곽에 살아서 놀 아이들이 많지 않은 동네였음에도, 집에 들어오면 밖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웠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말할 사람도 없어서 외로웠던 날들. 내가 지금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간절하게 바라면서도 내 아이들을 외롭지 않게 키우고 싶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의 나를 품어주는 마음으로 나의 아이들을 품어주면서. 당시 우리 집에는 출판사 외판원으로 일했던 이모 덕에 할부로 사들인 전집들이 꽤 있었다. 그 책들이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온기는 모두 그 책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방을 일단 책으로 가득 채우자.’

대학시절부터 결혼 후까지 쭉 모아 오던 책들을 몇 해 전, 집을 좁혀서 이사를 오면서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처분한 후이긴 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둘째 아이와 남편의 말기신부전 진단 앞에서, 내 꿈을 간직하는 건 사치이고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이라는데 나도 좀 버리고 심플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름 큰 결심을 했어도 과감하게 모두 버릴 수는 없어서 새로 이사한 집의 거실에도 전면 책장을 놓고 절반은 아이의 책, 절반은 내 책을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내 책들을 이 방으로 다 가져오자. 나만의 서재를 만들어보자.’

책들을 꽂을 수 있는 책꽂이를 작업실 방 사이즈에 맞게 새로 주문하거나 당근에서 구했다. 책꽂이를 조립하고 배치하는 내내 신이 났다. 이제 내 책들을 다시 소중하게 보관할 공간이 생겼으니. 책상과 책꽂이 배치가 끝난 후 집에 있는 책들 중 작업실로 가져올 책들을 추려서 조금씩 보따리를 쌌다. 하루에 두 보따리씩 들고 작업실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집에서 책 보따리를 싸던 중 오래된 고흐의 화집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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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달 용돈을 받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시절부터였다. 새책을 사면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밖에 살 수 없는 적은 돈이었다. 새로 나온 책은 서점에서 서서 읽고, 그래도 갖고 싶은 책은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돌며 헌책으로 구했다. 반고흐에 관련된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헌책방을 돌며 화집을 구했던 기억이 난다.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을 깊이 사랑하던 시절이다. 그때 사 왔던 화집 중 서문당의 화집은 저렴한 가격에 컬러로 고흐의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아했던 시리즈다. 보따리를 싸다 말고 털썩 주저앉아서 책장을 넘겨보았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해서 단 한 작품도 팔지 못했던 화가. 가난과 외로움과 싸우면서 그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으로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 그가 그린 <양파가 있는 정물>의 해설에는 그가 테오에게 썼던 편지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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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일에 치중할 마음이다. 그리는 습관을 다시 되찾기 위하여”

내가 되찾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이 방에서 나는 무엇에 치중해야 할까. 내가 정말로 이 방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그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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