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ㅈ언니를 기억하며
대학을 마치고 먹고살 일을 찾아야 했을 때 내가 처음 생각해 낸 일은 출판사 편집 일이었다. 책을 좋아했으니 막연히 평생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제일 처음 생각이 났던 게 출판 일이었다. 책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열정만 가지고 운 좋게 출판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모르는 것투성이고 배워야 할 건 많은 신입에게 편집장 님은 다른 편집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권해주셨다. ㅇㅈ 언니를 처음 만난 건 그 커뮤니티 내의 미술사 공부 모임에서였다.
매주 혜화동의 한 선배네 집에 모여 미술사 책을 함께 읽었다. 연말 식사 모임을 하거나 겹벚꽃이 피는 좋은 계절에는 사찰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다니던 출판사는 2년 만에 그만두었지만, 그때 이후로 친해진 몇몇 사람들과는 꾸준히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모임을 가졌다. 어느 날 ㅇㅈ언니네 집에서 모였을 때 언니는 책이 너무 늘어 수납이 힘들다고 토로했었다. 차마 책을 처분할 수 없어서 책꽂이를 늘리고 있는데, 이제는 책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문학 전문 편집자로 오래 일해온 언니의 책꽂이에는 내가 탐낼 만한 책들이 아주 많았다.
“언니, 책 절대 버리지 말고 잘 모아두세요. 제가 나중에 도서관 열면 언니 이름을 딴 서가 만들어드릴게요. ㅇㅈ서가. 멋있겠죠? 그때 제 도서관에 기증해 주세요. ”
내가 너스레를 떨며 언니의 책 수집을 응원했을 때 언니는 내 말을, 내 꿈을 진짜로 믿어줬을까.
출판사를 다니던 시절,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가 너무 힘들다고 느꼈던 것일까, 당시 내 노년의 꿈은 시골에 살면서 작은 도서관을 꾸리는 거였다. 먹고사는 걱정 없이, 돈 되는 일을 쫓아야 하는 걱정 없이 좋아하는 책을 사람들과 나눠 읽는 꿈. 나는 노년에 도서관을 운영하려면 젊어서 자격증도 따고 경험도 쌓아야 한다며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사서 자격증을 딴 후 도서관 사서로 근무를 하면서도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났고, 새로 나온 책들을 주고받으며(나는 주로 받는 편에 속했다)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첫째 아이 육아를 위해 도서관 일을 쉬게 되었다. 나는 노년의 꿈은 먼 미래이니 일단 미뤄두고, 또다시 젊은 날의 새로운 꿈들을 찾아다녔다. 가야금을 치고 전통자수를 배우고 텃밭 농사를 지었다. 내가 한국전통공예학교에서 자수보자기를 전문가 과정까지 마치는 동안에도 언니는 한결같이 책을 열심히 읽고 모으고 만드는 편집자로 지내고 있었다. 언니에게 간간히 ‘집에 책이 넘쳐나는데 도대체 도서관은 언제 만드는 거냐’는 농담 섞인 타박을 듣곤 했다.
언니와 만나온 20여 년 세월 동안, 우리는 책을 좋아하고 만들었던 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낯설지 않고 좋아하는 책 이야기 나누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서로의 가정에 닥친 여러 사건들은 그야말로 예측이 불가능했고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점차 우리는 책 이야기보다 그 변화무쌍한 일상과 돌봄의 고충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서로의 가족들이 크게 아프기도 했고, 본인이 아프게 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일을 그만두거나 이사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내가 먼저 집의 평수를 줄여서 이사를 하면서 책을 많이 버리게 되었고, 그다음에는 언니가 암에 걸려 이사를 가면서 더 많은 책들을 버리게 되었다.
이사를 앞두고 집정리를 하던 언니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이사 갈 때 짐을 다 버리고 갈 거야. 책을 엄청 버렸어. 달숲 도서관에 기증하려고 오랫동안 모았던 책들인데...”
그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약속을 꼭 지키고 빈말은 안 하는 성격의 언니였으니 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책을 더 열심히 모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언니가 나를 응원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네 꿈을 잊지 말라고, 나 대신 언니가 기억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노년으로 미뤄둔 그 꿈을 당연히 우리가 함께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니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나에게도 그 시간은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꿈꾸던 일을 그냥 미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때가 되었다’라는 문장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떠올랐다.
서재 겸 작업실을 만들기로 결심한 후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니 이제 언니한테 했던 약속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도서관은 아니고 일단 서재 겸 작업실 계약했어요. 온전히 홀로 쉬거나 생각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 나중에 준비가 되면 도서관처럼 공유도 해보려고요. 다락방에도 책꽂이를 가득 넣을 거예요. 언니 책꽂이 만들어둘게요. ㅇㅈ서가 알죠? 일단 놀러 오세요."
"책 다 버리고 왔는데 다시 모아야겠네. 몇몇 작가 책은 아직 있어"
아이를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나 심지어 본인이 아프게 된 후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던 언니였기에 무언가를 도모하는 언니의 목소리에는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셀프 인테리어를 할 예정이라 몇 달 정도는 걸릴 것 같다니까, 한 달 안에 바로 오픈하라고 재촉하면서 내가 이렇게 채찍질 안 해주면 또 미뤄지고 말 거라며 언니는 웃었다. 우리가 모았던 책은 버려지고 없지만 꿈은 버려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책은 이제부터 다시 모으면 되었다. 신나게. 다시 건강을 회복해서 재밌는 것들을 같이 해보자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컨디션이 좀 좋아지면 서재에 와보고 싶다고 했던 언니였는데, 내가 서재 셀프 인테리어에 매달려 있던 가을 동안 언니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암에 걸린 이후에도 너무나 열심히 운동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자신의 일상을 단단하게 꾸려가던 언니였기에, 우리는 모두 언니가 당연히 암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꼭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힘든 고비고비를 잘 넘겨오던 언니였는데, 이제는 영영 이 서재에 올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그렸던 노년의 꿈은 이제 나 혼자 이뤄나가야 한다. 이 한 칸 한 칸의 책장을 새로운 책과 이야기들로 채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