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방을 구했다

자기만의 방, 달숲 이야기

by 달숲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둠이 가득하다. 작은 원룸의 출입구 맞은편 외벽에 붙어 있는 화장실과 주방 창만이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데, 그마저도 내가 화장실과 주방 문 앞을 커튼으로 모두 가렸기 때문이다. 어두운 작업실 문을 열고 서서, 현관문 안쪽에 붙여둔 이케아 스마트 조명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천장 조명, 책상 조명과 함께 책꽂이의 스탠드 조명이 동시에 켜지면서 방 전체가 노란빛으로 가득 찬다. 어둡고 쓸쓸해 보이던 공간이 따뜻한 노란빛으로 가득 차는 순간. 잠들어 있던 공간이 이제 막 깨어나 숨쉬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어쩌면 그때 깨어나는 것은 이 방이 아니라 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내 마음에 탁 하고 노란 전구가 켜지는 순간.


이곳에서 나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니다. 오로지 나로 존재하는 곳. 노란빛으로 가득 찬 작업실에 들어서면 한 가운데에 노란색 안락의자가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다. 그 품에 푹 안겨 가만히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한다. 분주했던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고,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려두고 음악을 듣거나, 때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기도 한다. 19호실의 그 여자처럼. 작업실에서의 시간은 현실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도저히 내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때에도, 한 시간, 혹은 30분씩 잠시라도 작업실에 들르곤 했다. 그러면 그 짧은 시간 깊은 숙면을 취하고 난 사람처럼 마음이 가뿐해져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자. 사랑하는 내 아이들 곁으로, 행복한 내 집으로. 19호실의 그 여자와는 다른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작업실을 구해야겠다 결심한 건 2024년 봄이 막 지날 무렵이었다. 첫째와 십 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해였다. 아이가 키우고 싶다고 몇 년을 졸라오던 강아지도 입양을 해와서 집안에서 내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치워야 하는 돌봄 노동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이었다. 아이가 돌봄교실과 태권도 학원을 다니면 저녁까지는 내 시간이 확보될 거라는 나의 야무진 계획은 1학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삐그덕거렸다. 엄마와 떨어져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던 아이는 자주 아팠다. 하루는 무릎이 아파서 조퇴를 한 아이를 데리고 정형외과에 갔는데, 활동량이 너무 많아서 무릎에 물이 찼으니 태권도를 쉬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니, 학교부터 다른 학원 픽드랍까지 도맡아주던 태권도 학원의 그 훌륭한 서비스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고스란히 엄마인 내 몫이 되었다. 아이의 등하교와 학원 등하원을 도와주고, 오며가며 방앗간처럼 들르는 놀이터에서 아이가 노는 동안 지켜봐주며 오후 시간을 보내는 이 인생을 첫째에 이어서 십 년만에 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수시로 나왔다. 남자로 치면 군대에 두 번째 입대한 기분이 이러할 것이다.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도 점점 늦어져갔다. 게다가 이제 공포의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을 책으로라도 보상받고 싶어서였을까, 아이와 도서관에 들를 때면, 다 읽지도 못하고 반납하는 일이 더 많으면서도 내 책을 한아름 빌려오곤 했다. 그때 빌려온 책 중 한 권이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였다. 주인공인 수전은 자신이 꿈꾸던 가정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한다.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1960년대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완성해나간다. 그러던 중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비로소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오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깊은 허무에 빠진 그녀는 매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후, 낯선 동네의 허름한 호텔 19호실에 머물다 돌아온다. 오로지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책장을 덮고 나서 나는 당장 나의 19호실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수전처럼 삶에서 깊은 허무를 느끼거나, 아이들을 보며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되기 전에 나만의 방을 가져야겠다고 말이다. 가족과 가정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떠나 있을 곳,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마침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첫째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기에 그 돈에 맞춰 작업실을 구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날부터 네이버 부동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수시로 드나들기 쉽게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했고, 외부인의 출입이 쉬운 상업공간이 아니어야했다. 그렇게 범위를 좁히고 둘러보다가 한 복층 원룸 사진에 마음이 꽂혔다. 부동산에서 올린, 나무로 만든 계단이 있는 작은 방 사진이었다.


어릴 때 사촌들이 모여서 방학을 보내던 외할머니 댁에도 다락방이 있었다. 수많은 친척들 사이에서 쏟아지는 말들에 지쳐갈 때면 나는 혼자 그 다락방에 숨어들곤 했었다. 그 다락에는 이모나 삼촌이 학생 때 보던 낡은 책들이 몇 권 남아 있었다. 허리도 펼 수 없을 만큼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나는 그 다락이 너무 좋았다. 숨어있기 좋은 방. 혼자 있기 좋은 방.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 계단이었다. 당장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그 방을 보러 갔다. 방을 보는 순간, 나는 이미 내가 와서 앉아 쉴 노란색 안락의자를 어디에 놓을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삼시 세끼 아이들 밥을 지어 먹이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거나 아이가 가고 싶다는 곳을 가고 만나고 싶다는 친구들과 함께 놀러다니면서도 나는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나에겐 숨겨둔 내 방이 있었으니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나는 바통터치를 하듯 아이를 맡겨두고 작업실에 왔다. 노란색 안락 의자를 제일 먼저 사서 방에 두었고 오자마자 그곳에 앉아 쉬었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신이 나서 조금씩 작업실을 꾸미고, 가구를 조립하고 개미처럼 책을 조금씩 들어 나르며 노란방에서의 새로운 시간을 꿈꿨다. 그렇게 내 마음에도 바람이 살랑살랑 불며 가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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