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속에서도 기어이 연꽃을 피워낼 수 있는 힘, 사랑
<기생충>의 역대급 오스카 레이스 덕분에 경쟁작들도 같이 이름이 거론되면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었는데, <조조 래빗>도 그중 한 편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는 뉴질랜드 태생으로, 인디 영화 연출 및 배우로 활동하던 중에 MCU의 <토르 : 라그나로크>를 연출하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번에 선보인 <조조 래빗>은 '타이카 와이티티'의 장점들이 농축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조 래빗>은 일종의 성장 영화이면서 로맨스 영화이고, 전반적으로 유쾌한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묵직한 한 방이 있는 홀로코스트 영화이기도 하다.
<조조 래빗>의 주인공 '조조'는 어린 나이이지만 마초스러움을 뿜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열렬한 나치 추종자이다. 하지만 조조는 정작 토끼 하나 죽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약하고, 상상 속의 친구 '히틀러'를 만들어낼 정도로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조조가 우연히 엄마가 집에 숨겨놓은 유대인 소녀 엘사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겪는 일련의 소동과 사건들을 통해 조조는 갈등하고 또 변화한다.
조조가 사는 세상은 태풍의 눈이라고 해야 하나, 온 유럽이 전쟁에 휩싸여 지옥도가 펼쳐져있는 가운데도 왠지 모르게 평화롭다. 독일의 전세가 기울어져 가는 가운데도 조조가 천방지축 뛰어놀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철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조조, 요키 같은 어린아이들도 군사 훈련을 시킬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영화는 이를 유머러스함을 넘어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이름값 넘치는 조연 배우들은 일부러 타입 캐스팅을 한 것 같은데, 이를 약간씩 뒤튼 연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짧지만 샘 록웰이 보여주는 발군의 연기, 웃기지만 소름 돋는 레벨 윌슨의 마지막이 그렇다. 이처럼 군사 훈련도 마치 보이 스카우트 활동처럼 그려지고, 말도 안 되는 정신 교육 시간은 코미디에 가깝다(아이들에게 이게 먹혀들긴 하지만). 훌륭한 나치가 되기 위해 애쓰던 조조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는데, 바로 갑작스레 마주한 유대인 소녀 엘사 때문이다.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배운 것과 달리 희한하게 뿔도 없고, 거꾸로 매달려 잠들지도 않는다. 그냥 보통의 우리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조조는 그녀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혼란스러워한다.
엘사 못지않게 조조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조조 못지않게 존재감을 뿜어내는 상상 속의 친구 '히틀러'와 조조의 멋진 엄마 '로지'이다. 이들은 영화의 톤을 쥐락펴락하면서 관객들을 웃고 울린다. 특히 스칼렛 요한슨은 조연임에도 <결혼 이야기>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왜 아카데미 여우 주연과 조연 모두 이름을 올렸는지 증명해 보인다. 아쉽게도 영화는 '로지'의 퇴장 이후에 약간 무게감을 잃고 다소 평이하게 흘러가고 만다. 특히 지금 현재 일어나는 전쟁과 난민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후반부의 주제 의식이 너무 뻔해서 앞의 재치와 발랄함, 무게감마저 휘발시킨 게 아닌가 싶다(이는 <사울의 아들>이나 <인생은 아름다워>와 다르게 <조조 래빗>은 끝까지 아이의 시선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진 장점이자 단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조조의 내적 갈등이 커질수록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의 존재감은 작아진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난다. 사랑이다. 사랑만큼 본능적인 것도 없고 동시에 설득력이 강한 것도 없다. 조조는 그렇게 엘사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통해 자신 안의 틀을 깨고 나와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이성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며,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인류애이기도 하다. 세상은 여전히 지옥이지만, 이처럼 사랑이 있으니 그들은 춤출 수 있다. 영화는 이처럼 순수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꿰뚫어 본다. 물론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조조 래빗>은 온전히 아이의 시선을 담았기에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그래서 영화는 더 순수하고, 유머러스하며, 더 비극적이다.
P.S - 또한 삽입된 OST가 일품인데, 여러모로 <스윙 키즈>가 떠오르기도 한다(물론 <조조 래빗>이 이를 훨씬 깔끔하게 다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