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데군데 흰머리가 보이는 갈색 단발머리 사이 두 귓불. 한 마리의 반짝이는 초록.. 아마도 브라키오사우루스. 어찌됐든 둘리 엄마와 같은 종류로 보이는 공룡. 그리고 반대쪽에는? 역시 반짝이는 작은.. 너는 스테고사우루스 정도 되려나? 이 친구는 하늘색이다. 나는 내가 바르게 본 건가 한 번 더 본다. 맞다. 공룡 귀고리.
"교수님, 귀고리 엄청 귀여워요. "
그리고 그녀는 별안간 안경 뒤의 눈을 휘며 웃는다. 아, 역시 여자 쌤들은 이런 걸 봐주신다니까. 귀 뒤로 머리를 넘겨 꽂기까지 하면서. 이쁘죠? 양 옆 다른 게 포인트인데, 봤어요? 네. 너무 귀여워요. 진심이었다. 늘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옷을 막 입고 벗느라 뒷침이 빠져나가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만 없었다면 나 역시 따라 샀을지도 모른다.
" 집에 니모랑 상어도 있고, 사탕 모양도 있고 그래요. 내가 .. 스트레스 받으면 밤에 누워서 이런 거나 막 주문하고 그런다니까? 이 나이 먹고 말이야. 근데 어떡해. 이렇게라도 풀어야지."
유튜브에 성함을 치면 대표 교수로 소아 신장 질환에 대해 멋있게 (진짜 멋있게) 설명하는 영상이 뜨는 그 교수님이, 개별포장된 귀고리로 가득찬 작은 택배 박스를 기다리고 퇴근 후 박스 테이프를 뜯어 그것들을 하나 하나 귀에 끼워 보는 장면을 생각했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군요, 라는 말은 삼킨 채. 비슷한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금의 동질감을 멋대로 느꼈다. 교수님, 요새 스트레스 받으세요? 왜요오. 뒤에 ㅠㅠ를 붙여 줘야 할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다른 간호사의 말에 교수님은 웃었다.
그래. 스트레스가 있긴 하실 테지. 내로라하는 대학병원의 교수지만 .. 나와는 그 스트레스라는 것도 '클라스'가 다를 수 있겠지만.. 교수님도 스트레스가 있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쓸데없는' 것을 사 모으시는군요. 혹시 오늘 딱 이것까지만 사고 더는 안 사야지, 하는 생각도 하시나요. 라고는 당연히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