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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도 Sep 04. 2024

전이

가닿은 지점부터






오늘 수술한 지영 씨. 50세.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를 수술장에 내려보낸 후 새로 업로드된 의무기록을 보니 떼어내려 했던 종양은 악성이었고, 그 악성 덩어리는 폐로, 직장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옆에서 기록을 같이 보던 다른 간호사가 '이 사람도 또 케모 하러 엄청 오겠네요'라고 했다. 이송용 카에서 본인의 침상으로 굴려진 그녀는 노란 얼굴로 오들오들 떨었다. 곳곳에 거무죽죽한 베타딘이 묻은 채로. 그리고는 데워진 시트를 몇 겹 덮은 후 정신을 챙길 수 있게 되자 교수님은 언제 오시냐고 물었다. 서로를 많이 닮은 부유한  자매가 둘 다 그것을 궁금해했다. 조용한 어투에서도 그 사실에 대한 열망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나는 그녀의 안타까운 상태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목소리를 꾸며내어 저녁때쯤 오실 거라고 했다. 그는 대체로 병동에 저녁식사가 도착할 때쯤 휘적휘적 회진을 돌긴 했으나 가끔 안 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걸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언니는 어쨌든 수술이 끝난 사실을 축하하는 것처럼 한껏 산뜻하게 말하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고맙습니다, 했다.


그녀가 남은 본인의 인생을 갑작스레 가늠하고, 지나온 날들을 되새겨 보는 그 시각이 멀었으면 좋겠다가도, 차라리 빨리 알게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천천히 했다. 아니. 그러다가 또 영영, 그게 어렵다면 최대한 늦게 알게 되기를 바랐다. 혼자 그렇게 오락가락 생각하며 카트에 붙은 노트북으로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누워 있는 그녀의 상태에 대한 기록을 넣고 있을 때, 담당 교수가 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삶에서 어려운 일이란 전혀 없어 보이는 특유의 유들유들한 태도 그대로 그녀에게 수술의 경과와 예후에 대해 설명했다. 그 나이 든 의사에 대한 내 호불호와 전혀 관계없이, - 아니. 차라리 내 선호는 굳이 말하자면 '호'에 가까웠다 - 나는 그 장면을 귀로 들으며 그가 '싸패'가 아닐지 을 가졌을지 잠시 생각했다. 그녀의 언니는 그 교수에게 그 말을 들은 후에도 고맙습니다,라고 했을까.


일종의 선고를 내려주는 사람이 아닌가. 부인과 종양학과 과장이면 얼마나 저런 것을 자주 설명해 왔을까. 그 일에 있어 초년이었을 때에는 그도 나름 그런 소식을 전해야 할 때 응당 가져야 할 듯한 마음가짐과 어투에 대한 고민들을 했을까.

 

내가 그에게 '종양이 폐까지 올라와서 퍼졌대요. 또 밑에 직장이라고 있죠, 똥 싸기 직전에 대변이 머무르는 거기. 거기까지도 살짝 암덩이가 침범했고요. 검체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텐데 항암치료 이제 시작하시게 될 거예용.' 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아니. 나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듣게 될까. 저 상쾌한 어투의 말을 듣고도 나 역시 상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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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하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작은 아기가 대체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라나고 서서히 주위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권태에 찌든다. 이어, 어느 순간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낀 상태로 이제는 더욱 시들어갈 일만 남았으며 그 기간조차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몸은 이미 꽤나 낡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부지런히도 이런저런 증상들을 내보내 자꾸만 경종을 울린다.


타인들의 생활 내가 잔뜩 밴 비좁은 이 병실에서,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옷을 입고, 반강제나 다름없는 식사를 하고, 내 소변과 대변, 피고름 같은 것을 누군가가 통에 담아 양을 잰 후 그것에 대해 떠드는 것을 자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정작 나는 모르는 나의 피부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해 줄 누군가를 계속해서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남과 힘껏 불쾌하게 부대끼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일정 수준 자유를 박탈당한 채로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들어온 만큼 내보내려 힘쓰고, 내 몸에서 나온 것들에 혐오감을 느끼고..  비록 그것이 이제껏 진행된 삶의 본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도 너무 늦은 것 같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뚜벅뚜벅 걸어 나가 변화를 만들기에 나는 꽤 소진되었거나 망가졌고, 나의 많은 것들이 나를 이리저리 옭아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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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징벌 외에 다른 단어로 설명할 방법이 있나? 이렇게나 잔인하다니. 그리고 공평하다니. 나는 그 병실에 서서 그 여자의 인생이 막 둘로 갈라질 순간을 목격하며 이런저런 단어들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삶, 목표, 외모, 계절, 통증, 사회, 말투, 햇빛, 가족, 밥, 핏물, 드레싱, 배액관 뭐 그런 것들. 얍삽하게도, 그 장면 옆에 서서 나는 그 단어들을 나의 노화와 병마로부터 얼마나 멀리 또는 가까이 유지할 수 있을지 감히 가늠했다. 하지만 알고는 있다. 나와 내 옆의 사람들 모두 그것을 완벽히 피할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그런 순간이 올 거라는 것을.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모든 더럽고 지지부진하고 역한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임을.


어쩌면 사실 저 여자도 내가 잠시 멋대로 동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충격은 충격으로 두고서, 그녀는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 스스로는 변하지 않은 상태로 고요히 잘 살기를 바라기도 했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예고 없이 찾아와 그녀를 기쁘고 슬프게 했던 것처럼, 그 선고 아닌 선고 또한 그렇게 흔적만 남기고 결국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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