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도시 달리기

부드럽게 날아서

by 이븐도





늘 시끄럽고 활기가 넘쳤던 밤을, 조용한 곡을 들으며 조용히 달렸다. 달콤한 연애 속 장면도, 극으로 치닫는 감정의 파노라마도 아닌, 그대로 가라앉은 건물들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지나고 물가를 지나쳤다. 조용히, 부드럽게. 이걸 달리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집에서도 귀마개를 꼈다. 병원은 나에게 사실 너무 고단한 곳이었다. 애들은 울었고 펌프는 끊임없이 울려댔으며 사방이 알림음과 경고음이었다.






K는 맥줏집에 앉아 자기는 아기가 너무 좋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들어가 동그란 눈으로 애교를 부리는 세 살이 안 된 여자 아이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러게, 귀엽다, 엄청. 와, 어떻게 이렇게 이쁘게 생겼어? 라고 했을 것이다. 애는 귀여웠다. 고르고 고른 품종견처럼.

당연히 귀여운 그것을 보고 귀엽다고 하는 댓글들이 가득했고 정말로 그 아기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K는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예쁜 물건을 보는 것처럼 열심히 감탄했고, 그 사랑스러움에 반해버린 표정을 지었다. 나의 쓸데없이 나이든, 오만한 자아가 드러나지 않도록. 그리고 돌아서 그를 속으로 몰래 잔뜩 비웃었다. 그렇구나. 예뻐 죽겠구나, 예쁘지. 예쁜 애잖아.



나는 병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배웠다. 스스로를 공연히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이유다. 이 더럽고, 시끄럽고, 또 더럽고 시끄러운 곳에서 역으로 사랑을 배웠다.

아기들은, 아이들은 잠깐만 귀여웠을 뿐 대개는 귀찮은 존재였다. 약했고, 표현할 줄도 모르면서 시끄럽게 울었고, 더 시끄럽게 악을 질렀고, 나와 부모들은 그 애들을 데리고 뭔가를 헤야 했다. 엄마들은 지친 눈으로 더러워진 티셔츠를 입고 기름진 머리를 하고서 하루종일 애를 안고 있거나 한밤중에도 잠들지 못하고 이것저것이 잔뜩 너저분하게 든 유모차를 끌고 병동 복도와 병원을 걸어다녔다.

애들은 혈관이 막히기 쉬웠으므로 모두 인퓨전 펌프를 달고 다녔다. 기계는 시도때도 없이 알림음을 냈다. 애들은 울고 기계는 알림음을 멈추지 않았고 엄마들은 초췌하고 예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 내가 뭘 하고 있든 기계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으므로 나는 가서 해결해야 했다.


나는 가끔 그 소리들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다. 그리고 아기들은 그 모든 기계들보다 더 시끄러웠다. 끔찍할 정도로 울어댔고 악을 썼다. 대체 부모 성질이 어떻길래 애가 저렇게까지 우나, 하는 비논리적인 생각이 들 정도로 울었다. 끊임없이 토했고 시트에 대변이나 소변이 묻었고 엄마들은 그런 애들을 재우려 애썼다.




그들은 시끄럽고 더럽고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보통 인간인 탓에 그 귀여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낳은 이에게라고 그렇게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같은 인간의 눈일진대 그 병든 몸이나 초점이 나간 시선이나 잔뜩 침을 흘리는 모양새가 사랑스러울 리가 없었다. 똑같이 추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끄럽고 앞뒤없고 더러운 생명체들을 감싸지 못해 안달이었다. 극진히 보살피고 신경을 썼고 본인은 씻지 못하더라도 애는 정갈히 몸을 닦였고 평안히 잘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화를 내기도 했고 한 대 치고 싶게 굴기도 했다. 비논리적이었다. 감각을 넘고 현실감을 넘은 그 행태는 사랑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거였다. 말이 안 됐다. 그래서 사랑이었다.


사랑은 아름답지 않았다. 그 불쾌함을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느냐가 사랑이었다. 나는 내가 너무 오만해져 버린 것이 안타까웠으나, 그렇게 느끼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내가 느낀 것은 전부 사실이었으므로. 화장으로 덮고 필터를 씌우고 이미지를 연출해 드러낸 다른 모사품들에 비해 너무 선명하고 시끄럽고 냄새가 났던 진실들이었기 때문에.






퇴근길, 나는 응급실에서 올라온 애가 울어서 울었다. 이유는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배란기도 아니었고 생리 직전도 아니었고 인생에 시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알아서들 지냈다. 딱히 울 이유가 없었다. 꼽자면 그거였다. 애가 울어서.

몇십 켤레에 달하는 컨버스, 리빙박스 하나를 다 채우는 작은 인형들의 쓸모를, 그걸 살 때의 나를 납득하게 되는 날이 있다. 아마 오늘이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매일 다른 색의 신발 한 켤레, 작고 부드럽고 귀여운 형 하나 필요했다. 스스로를 쓸데없이 가련하고 심각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합리화하자면 그렇다.




나는 늘 시끄럽고 또 시끄럽고 더러운 곳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하느라 힘에 부으므로. 그런 보잘것없는 내가 신발까지 칙칙한 걸 신는다면 나는 쓸데없이 우울해질 것 같았다. 단지 월급을 받아서 하는 일. 그런 일에 깊은 의미 부여를 하며 병원을 나서서까지 가라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출퇴근 시간 도합 한 시간도 신지 않을 그 신발들을 그렇게나 사댔다. 한심한 핑계라고 늘 생각했으나 가끔은, 이렇게, 실감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그래. 이건 그냥 일이었다. 유니폼과 크록스를 벗으면 끝나는 일. 다시 청바지를 입고 라임색의 스니커즈를 신으면 끝나는 일. 연히 고단함을 느낄 필요는 없는 일.




애가 울었고 펌프는 사방에서 울려댔다. 나는 정말 그래서 울었다. 그곳의 그 풍경이 싫고 괴로워 울었다. 언젠가는 그 간극을 넘어 사랑을 이해했지만, 오늘은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 그 소리가, 감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재즈를 들으며 달렸다. 다 흘러가 버릴 감정들을 잔뜩 노래한 신나는 곡들이 아닌 여린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똑같은 경로를 움직였다. 공기가 차가웠다. 비가 왔었기 때문이다. 신기했다. 그렇게나 활기차게 달려댔던 곳을 공백이 가득한 장르를 들으며 서두를 것 없이 멍하니 뛰었다. 나는 이런 하루에 절망하지 않기로 했다. 고작 애가 울어서 힘든 날에 절망하기에는 나는 몸이 너무 건강했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내일로. 그 시끄러운 곳으로. 조용히 조도가 낮아진 도시를 조용한 곡을 들으며 뛰었다.


소리의 빈 공간들이 느껴지는 춥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며 밤을 돌았다. 지금은 조용하니 된 거였다. 울었으니 된 거였다. 다시, 귀마개를 끼고 잠자리에 들 집으로 가면 되니까 된 거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내 공간을 만들어냈으니 된 거였다.



내일도, 모레도 신발을 골라 그 소굴로 들어갔다가 나올 테니 사실은 괜찮은 거였다. 찬 공기가 달았다. 조용한 도시가, 공기가 달았다.

아직 살아서 그 시끄러운 알림음을 듣고 악취를 맡고 기름진 머리의 그들과 뽀송한 피부의 그들을 보고, 한밤중을 조용히 날듯이 달릴 수 있으니, 괜찮았다. 정말로.






+


지당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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