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진짜 싫어

앤 아임 투 큐트

by 이븐도





이건 일종의 과시일 수도 있다.

먼 미래에서 백수가 되어 있을 내게 하는 과시.

뭐가 있을까, 출근의 장이?


근데 일단.. 난 너무 귀워.






나는 출근 같은 걸 하기에 너무 귀여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른다가 아니고 맞을걸? 난 귀엽다.

한 시에는 나가는 게 맞는데 열두 시 반까지 누워만 있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 디즈니 주인공처럼 아아 출근하기시러어 가기시러어 너무너무실허어 했다. 나와서는 진짜 너/무/너/무/ 싫어- 하며 머리를 말렸다. 오후니까 그런 노래도 가능하지 데이 출근이면 커피 마실 때 말고는 입을 벌리지도 않는다. 물론 혼자 사니까 그게 더 당연하기는 한데.




진짜로, 나는 그런 걸 하기에는 너무 귀여운 사람이라니까? 샤워도 겨우 하고, 얼굴에 뭐 바르는 것도 겨우겨우 하고, 옷 꺼내 입고 가방 들고 나가는 것도 겨우겨우겨우 하는데. 그런 일도 하아기이너어무우시러어 가아기이시러허어 하면서 해야 한단 말이. 얼마나 귀여워.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열받게 생긴 빨간 꽃이나 노란 꽃 장난감 들고서 나도 누가 좀 달래줬으면 좋겠다. 딸랑이 들고 우루루루루루 이모 이거봐 이거봐 아이 어, 여기 너무 시끄러운데 여기 이거 뭐지 히야아 이 선생님 표정 봐 그치그치 아이쿠 잘하네 아이쿠 잘한다잘한다 해 줬으면 좋겠다.

안 해줄 이유가 있어? 나도 그 애들처럼 연약하고 -정말로- 혼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사실 진짜 그렇다고- 하나만 해도 폭풍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어? 나도 그만큼 귀엽단 말이야. 보잘것없고 약해 빠졌다구.




걔들은 잡기 놀이만 해도, 걷기만 해도 모두가 환호성과 찬사와 미소와 뽀뽀를 보낸다고. 물론 뽀뽀까지는 바라지 않지, 그렇지만? 나는 제시간에 병원에 도착해서 진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째려보고, 또 안타깝게도 제시간에 병동에 도착해서 다시 옷 갈아입고 속으로 진짜로 집에 가버리고 싶다는 걸 세 번은 더 떠올다고.

노래 못 불러 아쉽다는 생각도 하면서. 그리고 정상적으로 말하잖아. '..안녕하세용'. 얼마나 대견해. 정말.


집을 나서기 전과의 차이는 병원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속으로만 노래를 부른다는 게 전부다. 울지마라아하아 나도 울고싶어허어어 사랑해애해애 울지마아하아 아아집에에 가고싶다아아흐흐흑 어언제까지해야돼애 오늘 퇴근 글렀다아, 를 머리 속에 틀어놓은 채 조용히 웃고 말지.

이따 초음파 세 시 되면 검사실에서 바로 불러주실 거거든요, 어디 가지 마시고 그 때까지는 병실에 계세.




정말, 멋있는 거 아니야? 의상을 갈아입고 정해진 대사를 하고 있으니 그것도 일종의 연기다. 그리고 나한테는 그 정도의 연기도 너무너무 대단한 일이야. 불과 두 시간 전까지 엉망진창인 노래를 부르면서 떡진 머리를 감고 외계인 같은 형상으로 앉아 머리를 말렸으니까. 그런 내가 이렇게 말끔한 모양새로 단정히 말하고 있잖아. 대단한 일 아니야? 진짜로.


출근. 출근이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이 무대에서 열 시간의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집 현관문을 나가면서부터 연기라고. 심각한 척, 집에 가고 싶은 척, -이건 연기는 아닌데 대부분 지하철의 사람들이 그 표정이므로 나도 좀 톤을 맞춰줄 필요가 있지- 세상에 찌든 척, 인생에 재밌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척. 뭐든 알 것도 모를 것도, 다 알아 버린 척.




그리고 병동 문을 열고 들어가 유니폼을 입고서 간호사실로 들어가는 순간 배역 스위치. 안녕하세용, 네, 어머니. 어떤 거 도와드릴까요? 아, 네네. 아하. 정말 감사합니당. 고생하세요옹. 어머, 그러게요. 앗, 알겠습니다. 넹 감사합니닷. 그랬어어? 이거 아픈 거 아닌데에? 진짠데?


안타까운 일이다. 엄마아빠한테 내가 저렇게 말할 날은 영원히 안 올 것 같은데. 아. 직업이란. 내가 이걸 연기하는 댓가로 받는 이 소중한.. 월급이란.

근데 나는 배우가 아냐. 그래서 연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씨, 출근은 진짜 하기싫다. 짜.

진짜진짜진짜, 진짜 하기싫다.




왜, 막 그러잖아. 오늘도 스스로를 칭찬해 주라고. 그런 말들 다 비웃고 살았는데.. 제 이유를 알았다. 나는 이런 삶을 감당하기에는 진실로 비해서,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받아쓰기 다 틀리던 애가 세 개 다섯 개 맞으면 칭찬해 줘야 하잖아. 나는 항상 그랬다. 그러니까 오히려 칭찬은 너무나 지당한 일이다. 안 해준다?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거지. 이미 너무 잘났다는 거잖아.

나는 뭐든 겨우겨우겨우겨우 해야 하는 열등생이라 매일의 출퇴근마다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안다. 그래서 이 칭찬은 정당하다. 그것도 겨우겨우겨우겨우 하는 내가 그 출근을 했잖아. 싫어 죽겠는데 하고, 결국 왔잖아. 얼마나 대견해? 너무 귀여운 탓이다. 정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진짜야. 미래의 여전히 귀여운 나야, 어디서 귀엽게 사니? 집에 누워서? 카페에 심각한 척 앉아서? 아니면.. 똑같이 병원에서 꽃모양 마이크 흔들면서? 칭찬해 줘, 귀여운 건 보전해야 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나는 맨날, 늘 귀여울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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