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형 인간

그게 나야 둠바둠바두비두밥

by 이븐도





글을 쓰는 것의 장점이 있다.

아무튼 본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마음 속을 스쳐 가던 보라색이었던 것을 잡아채 얼려 다시 갈라내 보니 빨간색과 파란색의 혼합이었음을 알게 되는 그런 거.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



나는 돈이 주는 안정 속 자유를 사랑했다. 밤늦게 뛰어나가도 치안이 괜찮은 동네, 똑같은 종류의 다른 물건을 몇 개씩 사서 쌓아 두어도 아무도 잔소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공간, 시간을 쓸 때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아도 되는 양상, 택시를 타든 같은 것을 또 주문하든 내 선에서의 그런 부주의를 용인할 수 있는 여유. 내 자유는 비쌌고 삶은 공짜가 아니었다.






나는 늘 자유 비슷한 것을 원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맨몸으로 던져진 화성 표면에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오므라이스를 해 둔 집으로 가는 길에 노을 지는 초등학교의 운동장을 보고서, 저편에 부표가 뜬 얕고 예쁘기만 한 바다를 모래밭에 서서 바라보며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게 자유로 다가온 것은 실은 안정적이고 단단한 것들이었다. 왜 이제야 알았지?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면 병원 욕을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야. 또 나는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싫으면 그만두든가, 라고 늘 생각했으니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 확실히 길들여졌고, 사실은 좀 즐기고 있다는 걸.




왜일까? 난 정말 평생 일하도록 길들여진 건가?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을 한나절만에 잃고도 나는 단단히 각성하거나 비탄에 빠지지 않았다. 세상을 증오하며 부업거리를 만들고 살 길을 더 모색하지 않았다. 너무나 배가 불렀고 삶에 위기란 게 없었어서 불행조차 감지를 못 하는 건가.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자본주의형 인간이다. 일에서 오는 댓가와 그것이 주는 안정을 사랑하고, 그 일에서,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슬퍼했다. 나를 무가치하게 느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원래 무가치했다. 일해서, 그 안에서 어떤 역할로 기능한다는 사실만이 나의 무가치함을 대체했다.


스트레스와 공허함과 또다시 속을 비집는 울적함은 그 노동에서 번 돈으로 뭔가를 소비하며 잊었다. 또 그 비탄과 응어리를 소재 삼아 이런저런 것들을 썼고, 달렸고, 살아 있다고 느꼈다. 이건 뭐 뫼비우스의 띠도 닭과 달걀의 순환도 아니고. 모든 반복되는 것들의 비유를 다 갖다대도 들어맞았다. 정말 이보다 더 잘 적응한 상태일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아마 두 번째의 사춘기 같은 걸 지나는 기분에 느끼는 결론이다. 나는 돈과 노동과 그것이 주는 부차적인 것들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러면 또다시 질문인 거지. 이 몸의 기력이 사하면, 또 감기에 걸리거나 다리를 다치거나 한다면. 나는 뭘 느껴야 하나. 내가 고용된 상태가 아닐 경우 나는 뭘 느껴야 하나.


슬픈 일이다. 너무 안정적인 직업을 택한 탓에 그런 것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런 나로 살면서 평생을 두려워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돈을 사랑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그것이 사라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 알아내 대비해야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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