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대 끊기
대체 30분에 5km를 뛰는 인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했다. 토마토 수프에 파스타를 후라이팬 가득 때려넣고 그 다음날 달려봐야 하나 고민했다. 고민만 했고 하지는 않았다. 그냥 집에 와서 콜라를 마셨다. 당분간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별 이유는 없다. 지금의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새들은 어디로 가나 궁금했다. 봤다. 밤 열두 시 반. 휴대폰 카메라보다 내 시력이 더 나은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일 년의 반이 지나려 한다. 시간이 빠르다.
글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키보드를 켜 자리에 앉는 시간이 사라지듯이 지나가지 않는다. 일어나서도 개운치 않다.
브런치북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묶어서 주기적으로 올리기 전의 시기, 딱 일 년 전쯤. 태블릿에 저장된 채 낙서처럼 덮여 있던 것들. 그보다 다음의 것, 그보다 더 다음의 것, 한 달 전의 것, 2주 전의 것. 갈수록 그 몇 페이지를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었는데 찝찝함은 커졌다. 나한테 이제 끌어내 긁어 쓸 사연 같은 게 떨어져서 그런가 생각한다. 더 이상 써서 엮어낼 게 부족한가, 하고. 그런데 언제는 있었나. 있어서 쓴 게 아니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어서 썼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십 키로짜리 미니 마라톤에서 하프 마라톤까지 온갖 달리기 대회들이 열린다. 항상 생각해 본다. 십 키로, 나는 나가면 얼마가 걸릴까. 한 시간 이십 분이 좀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또 모르지. 항상 가던 길도 아니고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우르르 뛰는 거니까. 그리고, 사실 내가 뛰는 게 맞았나?
달리니까 달리기라고 부르는데 기록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초반에는 내가 정말 달리기를 하고 있고 러닝을 한다고 생각했다. 글쓰기처럼. 두 가지가 똑같이 흐른다. 하고는 있는데 그 때만큼의 엄청난 기쁨은 없다. 그러면 다시 생각하는 거지, 있어야 해? 그런 게?
요즘의 달리기에는 기대하는 게 없다.
예전에는, 신나는 노래를 채운 플레이리스트가 아니면 달리지 않았다. 짬이 나면 어떻게든 에너지를 꽉꽉 채워주고 세상을 더 알록달록 강렬하게 만들어 주는 곡들을 깔아 놓았다. 이제는 아니다. 시끄러운 노래를 하나를 틀어 셔플을 누르고 달린다. 아무거나 상관없다. 좋은 점도 있다. 그 곡만큼 텐션을 올릴 수도, 올릴 필요도, 뭔가를 억지로 느낄 필요도 없다.
그냥 달린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잘 수 없어서, 담배를 피우고 세상 끝까지 다 들이마실 수 없어서. 표현이 좀 토 나오나? 그렇긴 해. 아무것도 부술 수 없고 멈출 수 없어서 대신 잔뜩 달린다. 시간이 늦었는지 안 늦었는지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냥.. 나가는 거니까.
9개월을 채워 가는데 왜 나는 기록이 이렇게밖에 안 나오나 생각했다. 화? 울분? 스트레스. 그래, 스트레스. 또는 권태. 아니면 그 모든 것의 총합. 그걸 움직이는 다리와 어깨가 뚫고 지나가길 바랐다. 멍하니 걸으며 딴 생각에 빠지는 시간은 줄었을 것이다.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안 줬으니까. 그런데도 기록은 27분에 4km.
쫄쫄이 반바지를 입고 처음 호수공원으로 온 그 때나 지금이나 고수들은 천천히 멈추지 않고 뛴다. 난 그게 안 된다. 잔뜩 달리고 잠시 걷는다. 그렇게 반복한다. 그 강도가 올라갔다. 그런데도 나아지는 게 없었다. 대체 왜 하나, 이걸.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다. 하는 게 낫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안 하면 안 되니까. 딱 그 정도로 기운 빠지는 기록이다. 미친 듯이 개운하다기보다는 그냥 안 할 수 없어서 한다.
시작 자체가 패착이었을까.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처음에 느꼈던 그 기쁨 같은 것들은 다 뭐였나, 싶다. 당연히 그 때보다 지금이 그 어느 것이든 나을 텐데 그만큼 더 나을 지금은 마음이 늘 꺼져 있다. 그 땐 몇 번 채우면 무슨 간식, 몇 번 하면 무슨 사진 찍기 이런 걸 생각했다. 이젠 그런 게 없다. 글쓰기도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의욕은 사그라들고 얕은 실망이 시작됐다. 보장된 즐거움이라기보단 생존의 방식이 됐다. 그런데, 그래도 나아지는 게 보여야 하는데. 모르겠다.
카보 로딩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전날 탄수화물을 잔뜩 먹으면 쭉쭉 더 달릴 수 있다. 당연히 많이 먹었으니 기록이 더 낫겠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선수들은 그 방법을 쓴다고 한다. 경기 등이 있는 전날 그렇게 섭취를 하는 거지.
나는 운동선수가 아니다. 많이 먹으면 일이든 일상이든 집중할 수가 없다. 뭐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나 그럴 수가 없다. 타고나길 종지가 작아서다. 주 3회쯤 하는 달리기. 한 번 정도는 그전날 밥이든 빵이든 파스타든 많이 먹고 뛰어볼까 생각했다. 열받게 매번 비슷한 워치 속 숫자를 보면서.
역시나 가사도 못 알아듣고 잔뜩 시끄러워 그 곡이 그 곡 같은 노래들을 들으며 달렸다. 발목이 아렸다. 무시하고 뛰었다. 더 아팠다. 방치하고 뛰려 했다. 그리고 생각이 났다. 작년에도, 딱 하늘이 이렇게 시꺼멓고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내가 이 구간쯤에서 항상 느꼈던 통증.
발목일 때도 있었고 종아리일 때도 있었고 정강이일 때도 있었으며 윗 허벅지일 때도 있었다. 가지각색이었다. 소화가 덜 된 끼니에 배가 아릴 때도 있었다. 이제는 퇴근 후 달리기를 위해 도시락을 싸 다닌다. 어떻게든 그 때 먹어 놓으면 열한 시든 열두 시든 배가 아파서 못 뛸 일은 없다. 통증이라. 아픈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원래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걸.
무릎 보호대도 발목 보호대도 이제는 제습제와 함께 수납장에 들어 있다. 쓸 일이 없다. 안 아프니까. 그 정도가 되기 전에 조절을 했거나 하게 됐거나 며칠을 어쩌다 쉬게 되었다. 하여간 마지막으로 쓴 게 반 년은 됐다.
악으로 깡으로 뛴 게 아니었고 그냥 즐겁고 시원한 기분을 떠올리며 바깥으로 나갔다. 놀듯이 달렸다. 신발주머니를 들고 집으로 뛰어가는 애들처럼. 거기서 일 년이 채 안 됐다. 딱히 뭔가를 깨달은 건 아니었다. 그냥, 그래서 오늘은 그만 달리자 생각했다. 예전엔 달리다 페이스 떨어지면 뭔 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지금보다 쥐뿔도 없었으면서.
나무 데크로 된 산책로를 항상 턱턱턱턱 소리를 내며 달렸었다. 걸었다. 왜가리가 보였다. 보행로를 따라 조명을 설치한 다리보다 훨씬 더 멀리에. 한밤중의 시꺼먼 호수 앞에서 무슨 영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날개를 움직이며 서 있었다. 밤에 걸으니까 별 걸 다 본다고 생각했다.
아예 안 달릴 수는 없어서 그래도 조금은 뛰었다. 달리고 나면 가끔 탄산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것도 단 걸로. 제로콜라. 그리고 제로제로콜라. 제로제로콜라는 또 뭐야, 했더니 카페인까지 뺀 걸 제로제로라고 이름을 붙인 거였다.
편의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포토이즘 부스가 있다. 하이라이트 프레임이 나오면 항상 하나씩 가서 꼭 찍었다. 그렇게 기쁜 기분을 박제해 두고 싶었다. 운동복을 입고 찍은 적도 많았다. 정말 그렇게 행복했거든. 한 장을 찍었다. 집에 들어와서 작년 가을쯤의 것들을 같이 봤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서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몇 초쯤 유지하고 섰을 내가 프레임 안에 아이돌 멤버와 들어 있었다.
포즈가 생각나지 않아 원플원 콜라 두 캔을 이쪽저쪽으로 들고 찍었다. 표정의 차이가 컸다. 기쁜 것도 안 기쁜 것도 아니고. 그냥 오늘의 달리기 같았고 요즘의 일상 같았다.
그 때보다 살이 빠진 게 보였다. 달리기를 해서 빠졌다기보다는 그냥 요근래 빠진 거였다. 지금의 내가 저렇구나. 정말 약간 핼쓱해 보이는 쌩얼의 내가 서 있었다.
바람막이라도 항상 다른 색으로 입고 나갔었고 출근을 하더라도 조금 더 나은 옷을 입고 나갔었다. 지금은 그냥 입던 옷들을 적당히 빨아서 입는다.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 밝아 보였던 그 때보다 외모는 나을 텐데.
근래의 나는 그냥 내가 신경쓰게 되는 것들이 더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더 나아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든,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는 마음이든. 편안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그냥 여기 있는 상태.
다 시커먼 옷, 사이즈가 줄어 편해진 바지, 이건 여기가 끼니까 오늘은 안 되겠다는 얕은 실망. 당장 여기의 것일 수 없는 그 많은 것들. 바라는 것도 곤두박칠 것도 없어서 정적인 마음. 지금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외려 좋은 것일지도.
나는 글쓰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이유는 보통 세 가지였다. 남겨두기 위해, 잊기 위해, 넘어서기 위해. 이 글은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당장의 내게 카보 로딩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달리기에도, 글쓰기에도. 내게 뭔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두 가지는 언젠가부터 그렇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살기로 한다. 기대도 실망도 없이. 뭐든 반짝여 보이고 알록달록해 보이던 그 때보다는 정제되어 가라앉아 있지만, 그래서 역으로 평안한 마음으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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