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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YA!

이젠 그럴 일 없,

by 이븐도





을까? 없어야 되는데.

진짜야. 없어야 돼요.


흑흑.



노트를 펴드는데 숨이 다 조였다. 하, 답답해.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 멀쩡히 숨을 쉬었다. 근데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버릴까, 말까. 고민했다. 그냥 거기서 썼던 내 자료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많은 마음을 갖다 붙이게 될 것 같았다.

짙은 파란색 유니폼, 분홍색 시멘트 벽에 더덕히 붙어 있던 새벽의 매미들, 병동 출입문부터 간호사실로 가기까지의 그 짧고 긴 거리가 다 다가오는 기분. 아이고야. 안 되겠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버리자. 버리고 오자.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앞으로도? 응. 앞으로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바람을 가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일지 모른다. 그 모르는 마음을 안다. 그런데도 좀 바라게 됐다. 제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주세요. 제발요. 제발.






슬슬 로테이션 얘기가 나온다. 이제 병동에는 5년차를 넘는 오리진이 없다. 여기서 쭉 있던 고연차가 없다는 말이다. 대신 그 자리를 나와 내 동기들이 대신하게 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병원 여기저기에 새로 여는 센터며 병동 때문에 6월에는 대거 인사 이동이 있을 거라고 했다. 로테이션.

배치된 사람들은 다 똑같은 소리를 했다. 그냥 출근했더니 저보고 다음주부터 여기로 가라고 하던데요? 하하. 선생님. 그래도 여긴 많은 편이예요. 소아과라 그런가? 22사번 중에 아직도 아무도 로테이션 안 가신 데 여기밖에 없을 걸요.


아. 그렇구나. 그 정도로 많이 가요? 저 봐요, 저도 좀 늦게 온 편이예요. 아하.. 힘드시죠. 똑같아용, 아. 근데 진짜 6월에 신규 둘 오면 또 누가 나가요? 모르죠. 하긴 그냥 출근 전날에 알려준 사람도 있대요.




하하. 어쩌지. 만약 내가 간다면, 가서도 그러면. 또 가서 신규처럼 일해야 한다는 거잖아. 너무 무서운 기억이란 말이야. 여기랑 거기는 좀 다르려나? 거긴, 그 병원은 좀 심했던 게 맞잖아. 심했나? 뭐가 심했지?






고작 반 년 있었던 곳인데 기억이 이렇게까지 두려울 줄이야. 이런. 진짜 너무 무섭다. 7월 콘서트 공지가 의식에서 음소거 될 정도로 무섭다. 정말로 인생에 다시는 그런 시기가 없기를 바란다고.


왜 이렇게까지 부풀려서 기억하게 된 거지? 태움이 심했던 곳이라? 뭐, 그렇지. 옆에서 자꾸 누가 소리를 질러 댔어서? 그건 그래.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라서? 그건 그렇긴 한데 뭐 살면서 어떻게 원하는 곳만 가. 정말 태움이 심했나? 근데 안 죽었잖아. 아니, 뭐.. 그래. 그런 말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런데 아무튼 이직했잖아?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그 누구도. 태웠다라.. 흠. 태움이 뭐지. 뭘까.




못 한다고 윽박지르는거? 잡히는 대로 던지는 거? 근데 그렇게 막 난투극하듯이 뭘 맞지는 않았는데. 약어 풀 텀 한국말로도 뜻 다 대라고 했을 때, 버벅이니까 그 머리로 돈을 어떻게 받냐는 소리를 들은 거, 양심이 있냐던 그런 말? 근데 이거 내 기억 왜곡인가. 그리고 뭐.. 그냥 말이잖아. 말이라고. 칼도 총알도 아니야. 흠.

어쨌든 그 때의 내가 이런 걸 굳이 지어서 말할 정도로 에너지가 남아돌지는 않았을 텐데. 진짠가. 다시 물어볼까, 친구한테 내가 그 때 정말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냐고. 근데 뭐든 그런 걸 남한테 말할 정도면 그 내용보다는 아무튼 충격 자체가 좀 컸다는 뜻이긴 한데. 흐음. 도무지 실효성 없는 기억이다. 실체는 없고 객관성 떨어지는 증언과 느낌만 남은 장면.






기억에 남은 그런 강렬한 것만 끄집어내자면 사실 몇 개 안 되는데. 몇 개도 아니야. 이제는 진짜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안 나서 문제다. 알아야 안 무서워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돼.


그냥 그 때의 내가 엄청 울적하고 피곤해했고 어딜 걸어다녀도 항상 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 만 떠올라서 추리가 어렵다. 그 땐 진짜 그러긴 했다. 회기역, 청량리역. 바깥으로 도는 그 1호선을 내려다본 그물망 너머에서 갑자기 울고, 전철 자리에 앉아서 울고, 기차에 앉아서 울고, 본가에서 밥을 먹다가 울고, 옷을 입다가 울고, 또 울고. 근데 출퇴근길에는 안 울었다.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노는 날에는 죽을 것처럼 살다가 멀쩡히 출근하고 말도 안 되게 늦은 퇴근을 하고 그랬다. 짜증나네. 그래. 뭐, 그랬으니 여태 별일 없이 지낸 거 아니겠어. 정신 붙잡고 이직도 했다고.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정말 그렇게 살게 될까? 인생에 그런 시기가 또 아예 없으리라고 어떻게 단언해.






왜 작년 5월이 그렇게 행복했던 걸로 남아 있는지, 생전 처음 아이돌 콘서트 가서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소리나 지르다 와서 그런 건 줄 알았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건 3일뿐이잖아. 박스를 정리하다 알았다.


21년 5월. 동대문에서 매일을 짓눌리듯 살았고, 22년 5월, 지금 발 붙인 이 곳에서 어떻게든 정신차리려 애썼고, 23년 5월. 이제 넌 내가 필요 없지 않냐는 누군가와 사랑싸움일지 기싸움일지 모를 걸 하느라 피곤했다. 그렇구나. 그 무엇도 질척이지 않았던 가장 최근의 시기였다.



210422, 210507, 210523. 정직하게도 나의 것인 필체로 정성스럽게도 적힌 날짜와 메모들. 그림들. 도구, 용어, 전산 보는 법, 순서. 그 날의 실수. 글씨며 그림이 예쁘게도 정리되어 있었다. 언제든 찾아서 컨닝하며 일해야 했으니까.

지금은 거기서나 여기서나 아무것도 아닐 용어들. 그걸 실제로 환자에게 하려면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처방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치에서는 뭘 봐야 하는지 단정히도 써 놓은 노트. 할 게 없어서 이걸 이렇게나 정리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걸 이렇게까지 써 놔야 알았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한 장 한 장이 목을 조이는 기분이었다.


그래. 졸림은 사실 오바고 입가를 좀 깨물게는 됐다. 그래. 시간이 남았으면 그냥 옷이나 사러 다니지 이런 걸 애써 만들지는 않았겠지. 해야 하니까 한 거였다.






실습생이 물었다. 어떤 면역력 수치요? 바쁜 아침 싸가지 없는 문장을 삼켰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하세요, 아는 척 질문하시지 말고요. 병원에서, 병동에서 면역력 수치 하면 이거 하나밖에 없어요. 몰라요? 내뱉고 싶은 걸 참았다.


나도 저거 말고는 모르는데 저렇게 말하면 난 뭐 되게 똑똑한 사람인 것 같잖아. 그건 아닌데. 하하. 올라오는 짜증을 눌렀다. 어떤 면역력 수치..라기보다는 이거 보시면 돼요. 보통 이거 말하는 거거든요.



이번에 온 애들이 2학년이랬나, 3학년이랬나. 이것도 모르는데 실습은 왜 오는 거야, 참나. 모른다면 모른다고 해, 말 돌리지 말고. 덩치 큰 실습생은 진짜로 합장을 했다. 감사합니다. 요새는 저게 진짜 하는 인사 표시야? 신기하네.

아무튼 그래서 이 친구는 병실을 혼자 써야 해요. 저게 낮아서. 그게 언제더라. 지난 주였나. 그럼 진짜 쌩신규였던 나도 사실은 그 수준이었을까?


아니, 수준 운운하는 것보다는 나도 그 정도도 몰라서 그렇게 욕을 먹고 울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을 했던 건가? 그랬다면 할 말이 없는데. 정말 생각이 안 난다. 어쨌는지.

진짜 기억이 안 나서 또 기억을 해부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 이 노트를 보니 알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왜 몰라요? 하는 그 고정 멘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이렇게까지 써 놔야 할 줄 알았단 말이야? 대단했구만. 하하. 그러게, 4년 전에는 그랬구나. 그 때로부터 정확히 4년이 지났지. 포 이얼즈 어고. 4YA.






이름이 하얀이였다. 나이는 그 때도 몰랐다. 내게 내내 소리를 질렀던, 모든 이목구비를 총동원해 인상을 찌푸리고 짜증을 내며 일을 했던 두 번째 프리셉터. 이제 보니 지금의 나와 나이도 연차도 비슷했을 것 같다.

그녀는 나한테 왜 이렇게 짜증을 낼까 하는 생각은 애초에 안 했다. 그때 나한텐 그냥 썅년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렇긴 한데. 그래, 그렇긴 한데.


떨어지는 일만으로도 바쁜데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가르치라고 한다. 아니면 그 멍청한 애가 일하는 걸 닥치고 쳐다만 보다가 다 커버치라는 거지. 복장깨나 터지긴 했겠어.

아직도 기억난다. 보스 암이요, 억제대 두 팔에 다 하고 있잖아요. 왜 하나만 넣어요? 보스라고, 뜻 몰라요? 두 쪽 다 기록 넣으시라고요. 생각해 보니 진짜 별 내용도 아닌데 그 별 것도 아닌 걸 쫓아다니며 말하려니 그 사람도 빡이 쳤겠지.




하지만 난 그 때 진짜 하얀이를 죽이고 싶었다. 그 별 것도 아닌 기록을 하나 둘씩 빼먹은 내 생각보다는 그녀가 증오스럽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나 꽤 좀 되바라지긴 했군. 그리고 일을 참 못 하긴 했었나보다. 그게 신규구나. 그러게. 어떻게 이걸 몰라요, 동기가 신규에게 인계를 받다가 했던 그 똑같은 말. 인계를 받다가 보면 나도 당황스러워지는 순간. 어떻게 이걸 모르지, 하고 흠칫하게 되는 순간.

내가 특별히 못났던 것일 수도, 또 신규는 원래 좀 그런 것일 수도. 난 맨날 신규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그런 것 같은데 주변이 달라졌고 그걸 보는 내가 좀 달라진 것 같았다.






하얀이 얼굴에서 보이던 연식과 지금 내 얼굴의 그 느낌이 겹쳐 보인 때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이 났다. 늘어나는 신규, 실습생이라 부르고 대체 학교에서 뭘 배우고 온 건지 모르겠는 대학생들을 멍청하다는 말을 참고서 보는 요즘이 그렇다.

다른 디자인의 색깔과 유니폼, 다르게 생긴 사원증, 다른 헤어스타일. 다른 표정. 그리고 뭔지 모르게 비슷하게 떠오르는 나이의 결. 내가 컸다는 생각이라기보단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렀다는 느낌이 든다. 그 때의 하얀이가 딱 나 같았을까 하는 생각.






아무튼 그 노트를 쳐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로테이션을 가든 안 가든, 그런 신규 생활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데. 차라리 수능이 나았다.


구태여 대입을 끌고 오는 이유는 그건 그렇게 고통스러운 사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도 대입이 엄청난 사건처럼 모두의 인생에서 언급되어서 그렇지 나한테는 그냥 엄마아빠가 해준 세 끼 밥에 간식까지 먹고 하루 정해진 공부 하고 미래 걱정 좀 하면 되는 시기였으니까. 정말이다.

그 입시보다야, 그 신규 생활이 더 독하다. 다신 못 한다. 안 하고 싶다. 노트의 눌러쓴 모든 글자들이 좀 절절했다. 그래서 공책을 그냥 버리기로 했다. 버렸다. 잘가, 다신 보지 말자. 다시 이런 일이 닥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아무튼 가라, 잘.




글쎄. 불편하면서도 조금 다행인 것? 이제 나에게는 조금의 짬이 생겨서 어딜 가더라도 내게 그 쌩신규들을 대하듯이 불도깨비 같은 표정으로 쏘아붙일 사람은 없다는 거? 그런가. 근데 뭐 또 그것도 사실은 모르지. 그 때의 내가 정말 뭘 몰랐던 거기도 할 텐데,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대근무와 돈벌이와 직장생활 모두를 다 처음 해 본 입장이라 그게 얼마나 어떻게 부당한 일인지도 몰랐던 거기도 해.


알았더라면 정말 그냥 사물함 싹 비우고 응급사직이라도 했을까. 근데 그러면 아마 여기서 이렇게 적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여길 입사해서 일 년간은 나는 뭘 해도 그 병원을 떠올리며 거기보단 낫지, 엄청나게 낫지 생각하면서 아주 괴롭지는 않게 버텼거든.



버텼다는 표현도 우습다. 이런 것까지 우리가 해? 안 한다고 해, 한 번 해주면 다 우리보고 하라고 할 거라고, 라고 푸념하는 선임들을 보며 '그런 항변을 할 수도 있다니 여긴 정말 나쁘지 않은 곳이군요' 라고 생각했으니까.

거기선 괴로웠지만 여기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극복하지는 못했다. 나는 거기서 버텨낸 게 아니었거든. 이직은 이직이고 도망은 도망이니까.






가끔은 그런 꿈을 꾼다. 고1. 수학문제집은 너무 많이 남았는데 봄의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꿈. 다른 학년도 아니고 딱 고1이다. 2014년의 기억들. 그런 꿈을 꾸면 나는 아, 스트레스가 좀 많았나, 싶다.



아냐, 나 출근한다고. 학생 아니야. 직장인은 그런 거 안 해도 돼. 근데 진짜 수학 쓰는 직종으로는 이직하면 안 되겠어, 하고 갑자기 내 직업에 황송해하며 깨게 되는 것이다. 이상하게 고2, 고3때는 괜찮았는데 그 시기의 것들이 유독 그랬다.

차라리 수능 기출을 풀라면 풀겠는데 (하지만 이젠 못 풀겠지) 그 고1 수학은 지금도 도저히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거랑 더불어서 이것도 그렇다. 분명 지금은 너무도 쉬운 것들이 내 앞에 늘어서 있는데 그걸 보면서도 도무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뭐든 다 좀 뛰어넘고 밟고 서려 했는데 이 두 가지는 앞으로도 안 될 것 같다.






물론 딱히 상관은 없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생에서 똑같이 반복은 안 되잖아. 그냥 좀 찝찝할 뿐이다, 많이. 그래서 그냥 덮어 두기로 한다. 노트를 버리기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 없는 마음을 안고서. 제발, 다시는 이런 시기가 없게 해 주세요. 낱장으로 다 떨어지는 그 눅진하고 정성스러운 페이지들을 폐지 더미로 털며 생각했다. 제발요.


아니다. 있더라도.. 너무 힘들어하지 않게 해 주세요.

비록, 말도 안 되는 근무시간에 날카로운 말들만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미숙했고 멍청한 나까지 더해진 시기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이렇게 앞뒤없게 무서워할 일은 없게 해 주세요. 제발, 하고 고쳐 바랐다. 그리고 아마 그 노트는 이제 세상에 없겠지, 하하.




그러니까, 앞으로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제발. 정말로. 난 그 때 정말 힘들었던 것 같거든요. 한 번 해봤으니 또 그런 게 닥치면 괜찮은 걸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할까?

그래. 이 편이 나은 것 같다. 그래서 진짜 이게 최최종이다. 거기서도 했으니, 아무튼 할 수 있다. 그게 뭐든 간에 말이야.

무섭다고 안 할 거 아니잖아?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까?


있을 거야, 있다고 생각하자.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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