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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햄스터 가장

by 이븐도





그런데 나는 사실 햄스터는 별로다. 너무 약하고 작다.

돌고래 하고 싶은데. 돌고래는 집이 크잖아.

바다 전체가 집 아니야?

근데 그런 큰 집에 살 일이 없을 것 같은데.


6월의 바람으로 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6월이 제대로 오기 전의 저녁 바람. 지금이 그렇기 때문이다.

6-저-바는,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없어 출근을 한다. 나이트. 열두 시간 후면 다 끝나 있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그럴 것이다.






우리 집은 화목해. 이런저런 부침이 있지만 그런대로 잘 지낸다고. 뭐? 나는 내 보호자고 이 집 가장이란 말이야. 맞아. 그건 나도 그랬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이 조그만한 집의 집세를 내고 내가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때 드는 교통비를 댔고 기분이 안 좋으면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을 살 비용을 벌었다. 아프면 내가 나를 병원에 끌고 가야 했다. 진이 다 빠져 버린 상태로 집에 오면 아마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줬다. 근데 사실은 그런 말은 잘 못해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진지하게 인생을 저주하거나. 그녀의 삶도 양상은 비슷한 것 같았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이 1인 가구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내가 다 책임져야 했다. 가구의 구성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것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보장은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빨래나 청소 같은 걸 분담하는 대신 남의 정서적 지지도 해 줘야 했다. 나는 하루종일 병원에서 표정으로, 말로 그런 걸 오십 번은 하는데.


집에 오면, 햄스터 케이지만큼이나 작은 집에 들어오면 완전히 나 혼자였다. 다 내가 하는 대신 나만 신경쓰면 됐다. 그 사실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좋은데? 그 얘기 좋다. 했다. 약간 취해 너스레를 떨던 그녀는, 왜. 넌 뭐가 좋은데, 했다.






지하철역에서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그녀의 퇴근이 언제일지 나도 그녀도 알 수 없었다. 퇴근하는, 집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생활복에 학교 체육복을 입은 애들부터 취한 것 같은 배 나온 아저씨들과 온갖 종류의 청바지를 입은 젊은 사람들을 봤다. 다 멀쩡하지만 그 표정만은 다 구긴 후 억지로 편 종이 같은 이들.


열한 시 반이 넘어서야 그녀는 지하철역에 등장했다. 우리는 치킨과 떡볶이와 맥주 한 잔을 시켰다. 그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일이 늦게 끝난 이유와 병원 욕과 병원 사람이 아닐 때의 각자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떠들었다. 대충 그런 정리를 끝내고는 원래 하던 대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1인 가구와 햄스터. 나는 그 두 가지가 마음에 들었다. 아. 바닐라빈이 0.01프로 첨가된 바닐라 마카롱도. 야. 이것도 바닐라 마카롱이래. 대충 살자, 라고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그녀와는 14년을 봤다. 그녀가 야, 우리 인생의 절반을 봤어, 했다. 근데 내내 붙어있진 않았잖아. 그래서, 모자라? 결혼할래? 했다. 그녀는 기독교인이었다. 너희 어머니가 허락하실까? 왜? 우리 엄마 개방적이야. 결혼도 한 번은 해 보랬어. 이혼해 보는 것도 괜찮대. 아, 그래.


그런 그녀는 엄마아빠의 과잉보호 또는 짙은 사랑이 너무 뜨거워 간호사가 되었다. 우리 둘 다 이 일을 좋아서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3학년, 고1. 우리는 우리 둘 중 그 누구도 간호사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선생님이나 뭐 회사원이나 아무튼 그런 비슷한 게 될 줄 알았다.




넌 왜 했냐, 간호사. 그녀에게는 노선을 틀 기회가 많았다. 나보다 수능을 많이 쳤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간호학과 갔어? 나? 내가 내 힘으로 살고 싶어서. 그래. 나도 비슷했던 것 같다. 입시를 앞둔 학생 때, 대학을 들어가서, 각자 다른 지역에서 20대 초반을 보내다가 결국 같은 병원에서 짬이 상이한 동료로 만나기까지. 질문도 답도 항상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날에야 좀 와닿았다.

취직도, 해외취업도 아닌 그냥 그 이유. 내가 내 힘으로 살고 싶다는 말. 많은 동기들이 이미 우리 같은 '1인 가구'의 가장이자 보호자였지만 긴 시간을 통과한 상대를 이렇게 마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좋았던 건가.






우리는 사실 아직 완전한 1인 가구는 아닌 그녀의 기숙사 아파트 앞 무인카페로 들어가, 서로의 기억에 남은 주변인들과 그 때의 장소들과 또 지금 같은 건물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일하는 각자의 뭣 같은 점들을 끝없이 이야기했다. 새벽 세 시. 밖에는 비가 왔다. 이브닝을 마친 그녀는 오프, 나는 나이트. 가장 쓸데없는 이야기들에 밤을 낭비하는 아주 졸리고 잔잔히 신다.


야. 나 생각난 게 있는데, 나 진짜 살면서 온갖 동물들 닮았다는 거 다 들었거든? 근데 비둘기 닮았다는 말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비둘기? 어. 똑똑하네. 닮긴 했다. 진짜네? 대체 왜 비둘기인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녀와 지하철역 앞 물웅덩이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그 애들이 좀 비슷해 보였다. 그녀는 예쁘다. 외국인처럼 생겼다. 따라서 통상 예쁜 사람들이 닮은 동물들은 다 닮았다. 토끼, 다람쥐, 트위티.. 또 뭐더라. 하여간 그런 것들. 걔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제일 씽크빅한 애였는데. 근데 우리 엄마도 인정했어. 닮았대, 크크크.




넌 그 중에 뭐가 제일 좋은데? 닮았다는 거 중에서. 음. 햄스터? 햄스터? 왜? 귀엽긴 하지. 근데 넌 햄스터보다는 크지 않냐? - 그녀의 키는 168이다 - 왜. 왕크면 왕귀여워, 원래. 그래. 그러니까 왜 좋냐고. 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거든. 아, 아하. 근데 그건 다 그런 거 아냐? 너. 지금 나랑 있으면서 너만의 공간이 필요하니? 무슨 소리양, 자기야. 근데 너도 그래. 나? 햄스터? 난 아냐. 난 싫은데? 왜 싫어. 햄스터 집은 너무 쪼끄맣지 않냐? 그 쳇바퀴나 돌리고. 갇힌 것도 아니고 뭐야, 그게. 왜. 너도 너만의 쳇바퀴가 있잖아.


야.. 그렇게 맨날 똑같은 데를 돌고 돌진 않아. 왜, 너 쳇바퀴 무시하냐? 쳇바퀴 무시하지 마. 난 쳇바퀴 싫어. 흥. 그럼 니 쳇바퀴는 뭔데. 세븐틴? 그래, 그것도 그렇고.. 야. 그리고 요새 햄스터 쳇바퀴들 비싸. 너 봤어?






관심 없어, 임마. 내가 햄스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은, 두 마리를 같이 키웠는데 어느새 보니 햄스터 한 마리는 눈알만 남아 있고 한 마리는 앞발이 뜯어먹힌 채였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화들뿐이었다. 걔들 되게 예민하지 않냐? 난 그런 거밖에 생각 안 나는데. 진짜야, 너도 알잖아, 라는 내 말에 그녀는 역시 넌, 하면서 절레절레 하는 척을 했다.


맞잖아. 재원이가 그 때 그 얘기 해 줬던 것 같은데. 걔가 그래서 4단지 뒤에 묻어 줬다고 했어. 야. 너 나 멕이는 거지, 햄스터라는 거. 공격적이고, 좁은 데 살고, 같이 있으면 상대편 잡아먹고. 어, 그래. 그렇게 생각해. 아무튼 난 햄스터 좋아. 그래. 햄스터라고 불러줄게, 그럼. 지금 우리 거리 유지가 좀 적절하니? 응, 넌 상관없지. 상관없다고? 햄스터라며. 부대끼면 스트레스 받는 애들이라고. 아니지, 나랑 결혼하자니까? 자기야. 싫어? 1인 가구보다 혜택 많다구.






병동은 바쁘다. 할 수 있는 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에 욕을 섞지 않고, 그냥 할 수 있는 한 닥치고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쳐내는 것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갈구는 이 병동 출신 PA들과 자기들 할 말만 하고 끊는 검사실 사람들과 인계도 안 하고 환자를 올려보내는 응급실 사람들에게 쌍욕을 하는 것까지 참아야 했다.


참는 것뿐인가. 눈웃음치며, 앗 넹넹 하는 말까지 곁들여야 했다.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든 자기 애 좀 봐 달라고 시도때도없이 말을 붙이는 보호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근데 이건 맨날 똑같았다. 언젠 안 그랬나, 하는 질문이 의미도 없을 만큼. 그래서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걸 시작한 지는 4년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힘이 들까.




똑같은 일을 거의 4년을 채워서 한 거면 그래도 역량은 좀 늘었을 텐데 이만큼을 가지고도 이렇게 손발이 부족하고 뇌가 말라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좀 너무한 거 아닐까. 어떤 날은 두 시 환자 파악부터 열한 시 반 유니폼을 갈아입기까지 정말 다른 생각을 조금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며 떠올리는 거지. 비스트 영상 아홉 시간 보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은데. 콘서트 아홉 시간 해준대도 지겹지 않을까? 그러면 그런 결론을 조금은 안전히 내릴 수 있었다. 힘들다. 힘든 게 맞구나.


그렇지, 마찬가지로. 언제는 그런 생각을 안 했을까. 하루 동안 새로 뜬 하이라이트 멤버들의 사진을 보면서 퇴근하는 지금보다 더 옛날. 그 언젠가도 그런 생각은 했다. 그 때는 잔고를 떠올렸다. 집에 가면 써야 하는 두툼한 일기장을 떠올렸다. 반을 가늠해 남아있는 반을 보고서, 이만큼 살았으니 이만큼도 할 수 있다, 고 생각했고, 액수를 보며 위안했다. 그래. 돈 모았잖아. 그게 얼마든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 한 달. 정직하게 넘어간 그 일기장 페이지와 차곡히 모은 액수가 증명했다. 이렇게 지나왔다고.






그리고 돈을 잃었지. 야, 그럼 나도 이 집의 가장 할래. 근데 빚이 이천이야. 뭐? 아. 야. 아이씨. 눈물 닦어. 안 났어. 너 근데 그 때 상담은 왜 안 갔어? 아, 그런 얘기 하려고 꺼낸 거 아냐. 아냐?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너 그거 나중에 또 온다고. 교통사고 후유증처럼.


으휴. 후유증은 뭐 언제 깨끗이 없어지냐. 그건 그냥 내가 나한테 진 빚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복도에서, 카트를 끌고 병실로 향할 때, 액팅을 하고 와서 다시 간호사실로 돌아올 때,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며 출근하고 퇴근할 때, 버스에 앉아서, 실려서, 한 번씩 계속 생각이 났다. 이천만원. 내가 잃은 액수, 그 액수와 시간의 부재. 일기장처럼 두텁게 쌓이지 못하고 쑥 빠져나가 버린 것.




회피하려 했다. 일부러 개봉작을 보러 다녔고 바쁜 병동 일에 잊었고, 또 영화를 보러 갔고 혼자 뭔가를 썼다. 그 시간만큼 더 일하면 되지 했는데 정말 힘에 부쳤다. 신규였으면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라도 하지. 악과 깡만 있던 그 때도 아닌데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마다, 아무리 일을 하고 또 해도 인계시간이 빨리 다가오고 되어 있는 건 더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한 번씩 그 사실이 나를 조용히 눌렀다.

이렇게 번 돈. 이렇게 해서 그 때, 지금 번 돈. 왜 이 일이어야만 했던 걸까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친구와 도무지 만날 시간이 없어 오늘이, 그 새벽이 최선이었다. 약속을 잡을 때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오는 길에도 비가 왔다. 인정하니 나았다.






그래. 각자 잘 먹여 살리자. 난 너랑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 나도. 또 무슨 얘기를 했더라. 누가 익파해서 뭘 어떻게 치우는데 장례식장 연락이 어쩌고, 애가 어떻게 됐는데 그 보호자가 어쩌고, 병동에 자기 아빠 던져놓고 한 번씩 지랄한다는 그 보호자가 어쩌고. 병원 바깥에서 상대를 잘못 골라 말했다가는, 지나치게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귀찮을 정도로 설명을 붙여야 해서 안 하는 편이 나은 푸념들, 푸념 속 약한 안타까움. 뭐 그러니까 그냥 고충들. 고충과 또 고충. 같은 직종으로 일하며 비슷한 양상으로 이 1인 가구의 가장으로 사는 양상을 말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언젠가는 이런저런 공통점도 또 닳아서 흐려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리고.. 또, 알았서 좋았다. 이 집에는 빚이 2천이고, 이걸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말이지.


나만 책임지면 되잖아. 슬픈 나, 우울한 나, 배고픈 나. 쌍욕을 하고 싶은 나. 빚진 나. 목표 달성에 실패한 나. 아이돌을 보러 가는 나, 쓸데없는 것을 사 모으는 나. 수많은 나지만, 결국 나 하나뿐인 이 집에서는 나만 하면 되니까.






그 사실이 무겁기도 하지만 웃기게도 위로가 됐다. 다들 그렇게 살겠지? 그녀를 끝없이 기다리며 본 지하철역의 많고 많은 사람들 역시도. 간호사라 힘든 게 아니고, 교대근무라 힘든 게 아니고, 퇴근이 항상 언제일지 장담을 못 해 힘든 게 아니라, 그냥 스스로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진다는 건 언제나 그런 거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어. 다같이 힘들어라,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유난을 덜 떠는 것 같잖아. 안 그래?

아직도 늘 힘에 부친다고. 말했듯 아이돌 보는 것도 그렇게 오래 집중해서 하라면 못 한다니까. 일이란, 책임지는 건, 좀 그런 일이긴 한가보다. 빡세고 진 빠지고 힘겨운 거.


또 이런 스스로가 있는 한, 가끔 바람처럼 가볍고 시원할지도 모르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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