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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도 Dec 19. 2024

각자의 불행을 쥐고

어떻게 그리 살죠





내 워치 화면의 최장기 집권자는 하우스 박사다.

두 번째는 영드 '미란다'의 주인공 미란다, 세 번째는 하이라이트 멤버들이 1/4씩 나눠 갔다.

휴대폰보다 더 자주 보게 되는 시계 화면을 이 잘생겼지만 험상궂고 나이 든 사람으로 해 놓은 이유는, 그가 늘 불행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유를 다 설명한 거나 다름없잖아?

나는 이 드라마를 그가 잘생겼고 험상궂고 항상 불행하기 때문에 본다. 어느 에피소드를 보고 있든 그는 통증에 다리를 절뚝이며 지팡이를 짚으며 걷고, 마약성 진통제가 든 약병을 주머니에서 꺼내 구취제거 사탕을 털어 넣듯 먹는다.

여자, 남자, 백인, 흑인, 여타 인종, 미취학 아동, 노인, 장애인, 환자, 그리고 그 자신에게까지 그는 모두에게 신랄한 말들을 던진다. 그는 늘 아프고, 싸가지가 없으며, 후줄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90이 넘는 배우의 키와 팔다리 긴 몸 덕에 그조차도 '간지'나는 것처럼 보이긴 하나, 주름 하나 없는 셔츠에 넥타이나 니트조끼를 입고 잘 정돈된 머리를 한 윌슨의 옆에 서면 차이가 확연하다. 화면 속 그는 꾸질한 운동화에 구겨진 셔츠나 누가 줘도 안 입을 것 같은 괴랄한 티셔츠 입고, 주름과 수염이 가득한 얼굴로 남들을 조롱하는 표정을 아주 효과적으로 지으며 늘 외롭다.

그의 그런 모습은 상당한 위로가 된다. 나는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본다.










사실 하우스 박사만 그럴까. 이 드라마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이라도 세상을 떠나고 싶은 것처럼 사는 사람도 없지만.


인물들이 환자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종종의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이 병원에서, 그들은 그냥 살고 있다. 일한다. 기쁨에 웃는 장면도, 누군가의 멋지거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짓는 경우도 웬만해서는 - 아니, 그냥 없는 것 같다 - 없다. 때깔 좋은 뭔가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도 없으며 가족이나 연인 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없다. 등장인물들의 데이트 장면이나 뭐 그 비슷한 장면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은 그냥 '살고 있다'.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 드라마에서 자세하고 다채롭게 나오는 것은, 환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끝도 없이 나오는 크고 작은 불행과, 미치게도 여기서 걸리고 저기서 삐걱이는 상황들이며, 그런 상황들을 도와주지 않는 더 다양한 여건이나 인물들에게 독설을 내뿜는 하우스 박사의 드립력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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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은 굉장히 아름답다. 그러나 상처가 있는 인물에게 끌리며, 하우스 하위 의사 셋 중 가장 인간적으로 상황을 고려하며 동정심이 있지만 그건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득이 되지는 못한다. 체이스 역시 잘생기고 유능하며 그에게는 캐머런 같은 약한 마음 것도 없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를 영영 회복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아마 향후 그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포어맨은 거리에서 마약에 손을 대거나 남의 집을 털어본 적 있는 등 별로 교양 있다고 표현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 잘난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거 탓에 발목 잡히는 장면들이 나온다. 론 그 때문에 하우스가 그를 선택한 것도 있지만.


윌슨. 잘생기고 따뜻하며 환자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받는 참의사. 그러나 그는 이성, 특히 아픈 이성에게 마음이 약하다. 그리고 하우스와 친구인 것을 보면.. 뭐.. 그 안에도 충족되지 못한 문제가 많은 것들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커디. 아름답고 유능한 병원장. 그녀에게는 매일매일이 그 병원 최고 능력자인 하우스 박사의 사건사고들 병원의 행정적 절차 내에서 커버하는 챌린지나 다름없다. 또한 그녀 역시, 아니 이 등장인물들 모두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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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나가는 의사도 아니며 그에 비견하는 뛰어난 두뇌, 신임 그리고 그들의 아름답고 잘생긴 외모 등등등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빼면, 그의 삶은 이 지지부진 현을 사는 모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 당연히 그것들을 배제하면 인생 엄청나게 달라지기는 하지. 하지만 이쯤 하도록 한다.










하우스는 들으면 기분 나쁠 법한 말들을 전방위로 발사하며 등장한다. 항상 이유가 있 말들은 원인을 정확히 건드리는 유머들이다. 솔직히 틀린 말도 없다. 죄 맞는 말. 작중에서 그는 그런 본인의 말버릇 (이라고만 해도 되나? 사실 그게 그의 인생 그 자체인데) 때문에 총을 맞기까지 하지만.. 어쨌든 부상을 입는 건 화면 속의 천재 의사 하우스일 뿐 내가 아니니까. 나는 그의 맞는 말 대잔치를 보며 비틀린 기쁨을 느낀다.

2004년에 방영을 시작해 총 8 시즌으로 종영하기까지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인 이 드라마를 보며 그런 도파민을 느낀 건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 어떤 정치적 올바름이나 남의 기분이나 상황 같은 걸 고려하지 않고 되는 대로 떠들 치고받고 싶은 기분을 느끼면서 살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이런 드라마가 당길 때가 있고 저런 드라마가 당길 때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끔 기쁘고 자주 짜증이 나며 누군가와 사귀고 있든 사귀고 있지 않든 외로워하며 산다. 내가 그렇다. 이게 당장의 삶에 문제가 되는 정도도 아니며, 이 상태에 불만이 없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는 안 되는 것처럼 굴러가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저러지 않아도 삶은 멀쩡히 진행되니까. 아니, 내가 진행시키고 있으니까.

일하고, 퇴근하고, 누군가를 가끔 만나고, 또 출근하고, 아니면 그 비슷한 생업을 이어가기에도 인생은 너무 바쁘다. 이 자체가 고통 같을 때가 있다. 주황 약병을 들고 성질을 내며 남을 잔뜩 힐난하는 하우스 박사의 주름 가득한 표정처럼.



이 드라마에는 거짓도 기만도 없다. 뭐, 배우들의 잘난 외모가 기만이라면 기만일 수 있겠지. 하지만 그조차도, 그런 인물들조차도 저런 에피소드 속에서 연민을 느끼고, 짜증을 내고, 질려하는 걸 보는 맛에 이 길고 긴 드라마에서 '하차' 하지 못한다. 각자 다들 그렇게 불행을 쥐고서 사는 것 같아서.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모두가 공평히 죽고, 똑같이 힘겨워하는 이 세상살이에서, 하우스 박사가 소리는 독한 말들로 스트레스를 푼다. 다 그렇게 산다는 닳고 닳은 말을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떠올리고 위안받는다. 그렇게 화내고, 제각기 불행하고 조금 외로운 채로 잘 산다고.












크리스마스가 벌써 일주일 남았군요.

아프지 않는 연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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