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착한 사람이었다
아니, 착한 사람이어야 했다. 누군가 부탁하면 "응" 하고 대답했고, 약속이 겹치면 내 일정을 미뤘다. 친구가 새벽에 전화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받았고, 회사에서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내 일을 제쳐두고 달려갔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참 착하다"
"우미씨는 참 속이 깊어"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그 말들이 좋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연락했지만,
내가 연락하면 답장은 늦었다.
약속을 잡을 때 내 일정은 늘 나중에 고려됐다.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나는 새벽까지 들어줬지만,
내가 힘들 땐 "그래도 넌 알아서 다 잘하잖아"라는 한 마디로 정리됐다.
나는 생각했다.
'뭐... 내가 알아서 다 잘하긴 하지...'
그래서 더 웃었다.
더 들어줬다.
더 맞춰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럼에도 나는 더 커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작아졌다.
어느 날, 내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애쓰면서 살아?"
일곱 살 때였다.
내가 그림을 다 그리고 정리정돈을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말했다.
"우와, 우리 딸 정리 정돈했구나. 아이고 착해. 착해. 잘했어. 엄마가 많이 사랑해."
그날 나는 배웠다. 착하면 사랑받는다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을 때 아빠가 말했다.
"역시 우리 딸! 역시 똑똑해 잘했어 자랑스러워."
그날 나는 또 배웠다. 잘하면 자랑스러운 아이가 된다는 것을.
이렇게 자라면서 내 마음속엔 인생 공식이 생겼다.
사랑 = 노력
착하게 행동하고, 좋은 성적을 내고, 먼저 양보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이면 사랑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멀어진다.
문제는 이 공식엔 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더 많은 게 요구됐다.
100점을 받으면 1등을 해야 했고, 1등을 하면 전교 1등이 되어야 했다.
착하면 더 착해야 했고, 양보하면 더 많이 양보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28살이 됐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아, 남을 기쁘게 하는 게, 남에게 맞춰주는 게,
곧 나를 기쁘게 하는거야.'
민준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민준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긴장했다.
'오늘은 어떤 얘기를 해야 재미있을까',
'이 옷이 괜찮을까',
'내가 지루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나는 민준 앞에서 항상 웃었다.
민준이 하는 농담에 크게 웃었고, 민준의 취미에 관심을 보였고, 민준이 가고 싶어 하는 곳에 함께 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은 숨겼다. 민준이 시시하다고 생각할까 봐.
어느 날, 민준이 말했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근데 뭔가... 네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나는 당황했다.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내가 이렇게 맞춰주는데?'
"네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화가 날 땐 어떤 사람인지...
그런 게 하나도 안 보여. 너는 항상 웃고, 항상 좋다고 하잖아. 그게 진짜 너야?"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애쓸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려 할수록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는 것을.
진짜 나를 숨길수록 진짜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이걸 '프라트폴 효과'라고 부른다.
완벽한 사람보다 작은 결함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커피를 쏟거나, 말을 더듬거나, 웃을 때 코가 찡그려지는 그런 작은 실수들이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이 진짜로 끌리는 건 완벽함이 아니다. 자연스러움이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비를 싫어했지만,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창가에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세상이 조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일기장에 내 생각을 적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산책하는 걸 좋아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그 시간. 누구에게도 맞출 필요가 없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이미 여기 있었구나.'
사랑받기 위해 애쓰느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느라 보지 못했을 뿐. 진짜 나는 항상 거기 있었다. 조용히, 꾸준히, 변함없이.
그날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니?"
대답은 침묵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은 알았지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몰랐다. 아니, 배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라고 배웠지만, 나 자신에게 친절하라고는 배우지 못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라고 배웠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라고는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가혹하다. 작은 실수에도 자신을 질책하고, 남들은 쉽게 용서하는 일도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사랑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진짜 나를 알면 실망할 거야',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겠어'.
반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자신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서는 특별한 에너지가 나온다. 자신감과 여유로움, 그리고 진정성이 묻어나온다.
나는 그날 나 자신과 약속했다.
내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보기로.
변화는 작은 것부터 시작됐다.
친구가 저녁 약속을 제안했을 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미안,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어. 다음에 만나도 될까?"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좋아!"라고 했을 것이다. 피곤해도, 가고 싶지 않아도.
회사에서 동료가 업무를 부탁했을 때, 나는 내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내 일도 마감이 촉박해서 도와주기 어려울 것 같은데. 다음주 되면 가능한데, 그때 도와줄까?"
남자친구 앞에서도 나는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늘 네가 한 그 말이 좀 속상했어."
처음엔 두려웠다.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관계가 끊어지면 어쩌지?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하며 멀어졌다. "너 요즘 이상해졌어. 예전엔 안 그랬는데." 그들은 내가 항상 웃으며 자신들을 받아주길 원했다. 진짜 내 모습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반가워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말했다.
"너 알아? 너 요즘 훨씬 편해 보여. 예전엔 항상 뭔가 어색했는데, 지금은 좀 너의 당당함이 보여서 좋아."
새로 만난 사람들은 내 솔직함에 호감을 보였다.
"우미씨는 자기 생각이 확실해서 좋아. 요즘 이런 사람 드물어."
나는 깨달았다. 진짜 나를 보여줬을 때, 진짜 사람들이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소수의 진짜 관계가 수많은 가짜 관계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1년이 지났다.
나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비가 내리고 있다. 예전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좋아."
핸드폰이 울린다. 친구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예전의 나였다면 자동으로 "응, 돼!"라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잠시 생각한다. 오늘 하루 힘들었고,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미안한데 오늘은 좀 쉬고 싶어. 내일이나 이번 주말에 만나면 안 될까?"
전화 너머로 친구가 웃는다.
"그래, 당연하지! 푹 쉬어. 주말에 보자."
나는 미소 짓는다. 거절했는데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진짜 친구는 이런 거구나.
그날 저녁, 나는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소파에 앉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음악을 듣고, 비 소리를 듣고, 내 호흡을 느낀다.
행복하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행복하다.
그냥 나 자신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때 깨닫는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거였구나.'
당신은 지금 사랑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당신은 당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나, 아니면 바꾸려고 애쓰고 있나?
당신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있나?
이 질문들에 답하기 어렵다면, 괜찮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 모두 그러니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미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능력이나 외모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당신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애쓰는 사랑은 진정성을 잃는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 없이 흐른다.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왔다면, 이제 그만 내려놔도 된다.
타인의 기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비트는 그 모든 무게들. 당신은 그것들 없이도, 아니 오히려 그것들이 없을 때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자기 수용이 사랑의 출발점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사랑도 온전히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