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
첫 연락을 받고 만나기까지 3주가 걸렸다.
연락처를 준 뒤로 계산하면 한 달이다.
문득 나를 스치던 느낌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면 처음 그를 본 순간 받은 이상한 느낌을
빨리 지웠어야했는데.
나는 우리의 끝을 예상했고, 알고 있었다.
그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준수한 느낌이었다.
흰 피부에 둥근 뿔테 안경, 얇은 머리카락과 무심하게 자른 헤어 스타일.
키는 나보다 머리와 목의 길이를 합한 만큼 컸고, 체격도 적당했다.
사진으로 봤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그는 애초에 이 만남에 무심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처음 연락을 받고 타이밍이 엇갈렸던 우리는
많이 바쁘냐고 묻는 내가 출현하기 전까지 1주일이 걸렸다.
그때 2주 뒤에 만날 약속을 정하고, 그는 당일 정오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오늘 약속 잊으셨나 보네요. 주선자에게 그렇게 얘기할게요."
지금에서야 후회되는 말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냉랭함이 당연했다.
그는 일을 했다고 했고, 우리 집 근처로 오면 8시라고 했다.
갑자기 내가 너무 심했다는 자책이 들어 만나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 8시.
애써 찾은 파스타 집 인테리어는 편안했다.
원목과 조명이 어우러진 포근함이 편안했다.
9시까지 운영하는 집이었지만
그는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주변에는 식사가 되는, 처음 만나기에 적당한 곳이 없었다.
서로 늦지 않게 도착했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나는 급호감으로 태세를 전환했고, 그도 응했다.
지금은 나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그저 매너였을까.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다른 곳으로 옮기느냐, 이만 헤어지느냐의 문제가
우리 사이에 놓였다.
양쪽 주선자에게 욕을 먹을 만큼 똑같이 미련한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이때부터 나의 과한 배려가 시작된 건 아닌가 싶다.
그의 스케줄은 어마무시했다.
오전 6시 반이면 사무실에 출근했고
12시간 근무는 기본, 저녁 8~9시 퇴근이 다반사였다.
우리가 만난 토요일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토요일 그러니까 주 6일 근무자였다.
주 52시간으로 들끓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주 6일 근무자를 눈 앞에 앉혀두고 황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를 만날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계속 나를 따라다닌 의문.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