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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Dec 27. 2021

내가 창업가가 될 상인가?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아웃라이어, 그릿

 자녀가 있는 회사원들의 주된 관심사는 '교육'이다. 연수원에 근무했을 때, 가장 치열한 토론은 '어떻게 하면 아들/딸을 잘 교육시킬 수 있을까?"였다. 토론 참석자는 교육학, 심리학, 경영학 석박사들이었다. 그들은 회식과 회의 틈틈이 머리를 맞대고 해답을 찾았다.


 교육에 조예가 깊은 이들도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조기 교육이 비효율적인 점은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학업보다 운동, 미술, 음악 등을 다양하게 체험시키고 싶었지만 학원비는 빠듯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영어 유치원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이는 그나마 넉넉한 사람들의 선택지였고 대부분 공립 유치원이라도 감지덕지였다.


전문의들은 정서발달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잡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고도 학습' 일수록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다. 능력은 펜과 종이로만 길러질 수 없다. 경험이 결정적이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다. MBTi와 같은 성향 진단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창의성, 업무 완성도, 학습 능률도 성향이라고 오해한다. 능력은 배우고 익히는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원과 사업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끔 창업한 대표들과 회의를 할 때면 그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곤 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도 회사원이었고, 별 다른 준비 없이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업은 배울 수 있을까?
창업에 유리한 성향이나 성격이 있을까?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사람들


 '모두의 자동차'를 운영하는 모두컴퍼니의 김동현 대표는 LG CNS 출신이다. 그는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마친 후 사업을 시작했다. 중고폰 수출 사업이 실패하자 2013년 주차공유 플랫폼인 '모두의 주차장'을 런칭했다. 최근 쏘카가 '모두의 주차장'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인수 추정금액은 약 300억이다. 김동현 대표 지분이 100%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수금액 모두 대표의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2021년 유니콘 기업의 상당수도 작은 게인 사업에서 시작되었다.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는 모텔에서 일하면서 '모텔 이야기'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했고, 숙박권과 물품 거래가 오가면서 야놀자의 전신을 만들었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웹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창업을 시작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배달업소 연락처를 앱으로 옮기는 사업을 구상했고, 이것이 '배달의 민족'이 되었다.


5년 내에 합류한 기업이 많다.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창업 아이템을 찾았을까? 어느 날 번뜩 번개처럼 떨어진 것일까? 그보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어떻게 알 게 되었을까?


 성공한 국내외 창업가들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단골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시작은 아주 작았습니다. 처음에 큰 확신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죠.",

 "앞서 망한 사업도 많아요. 다섯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겸손의 표현인지, 진짜 인사이트를 알려주는 말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월급 나오는 수준'의 사업 만이라도 이끌고 싶은 회사원들에게 이들은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 그들과 만나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우리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다.


아웃라이어와 그릿의 배신


 최근 10년 동안 기업과 성인교육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자기개발 서적을 뽑으라고 한다면, 난 두 권을 뽑을 것이다. 하나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하나는 안젤라 리 더크워스의 '그릿'이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개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웃라이어'는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 분야에서 1만 시간을 채우게 되면 '아웃라이어(보통의 범위를 넘은 사람)'가 된다고 주장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좋지만, 중독된 것처럼 그 일에 빠져드는 것이 성공에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야근을 사랑하는 회사가 참 좋아할 말이다.


 '그릿'은 경영자들이 더욱 좋아할 말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도 그저 그런 성취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위대한 성과를 이루는 대부분은 천재들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과 보통 사람의 그 차이를 저자는 '그릿'에서 찾았다. 그릿은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끝까지 해내며 능력'을 말한다. '그릿'에 따르면 집중하고 열정을 쏟아부은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이룬다.


 한동안 기업은 '아웃라이어'와 '그릿'을 맹신했다. 회사에 계속 다닌다면 전문가인 '아웃라이어'가 될 것이고, 포기하지 않고 '그릿'을 한다면 반드시 큰 성과를 이루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도 사용되었다. 평가를 좋지 않은 사람은 '그릿'인 열정과 집념이 없는 거라고 낙인찍었다. 모든 기업들은 경력과 열정은 성경구절처럼 외쳤다. 만약 실패한다면 원인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돌렸다. 우리 역시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밖으로 나와보니 회사원들은 '아웃라이어'가 아니었다. 나 역시 만 시간은 넘게 회사에서 일했지만 전문가이면서도 전문가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수두룩했다. 회사에서 얻은 전문성으로 독립하여 밥벌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 우리는 그것을 전문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회사에서 발휘한 '열정과 집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상은 전문가들이 가득한데 회사에서 배운 것은 왜 충분하지 않을까? 제너럴리스트나 희소성 없는 전문가로 성장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제너널리스트들이 승리하는 법


 '아웃라이어'와 '그릿'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단, 방향이 빠져있다. 나에게 맞는 사업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속력을 낼 수 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엡스타인의 주장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20년에 번역된 데이비드 엡스타인(David Epstein)의 책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에 따르면, 지금은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과도하게 이루어진 시대다. 전문성의 과도함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범위'를 좁게 만든다. 책의 원제는 'Range : Why Generalists Triumph in a Specialized World'다. 메시지를 생각하면 <범위 : 전문화된 세상 속에서 왜 제너럴리스트들이 살아남는가>라는 번역이 더 적절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한 가지만 파고들어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신화는 틀렸다. 아니, 아주 일부에만 적용된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뒤늦게 정착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조기교육이라는 종교에 빠져서 능력을 낭비하고 있다. 실제로 어렸을 때부터 한 분야에 몰두한 성공한 사례는 아주 예외적이다. 처음 선택한 악기로 성공을 거두는 음악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부분 슈퍼스타들은 '늦은 전문화'로 성공을 거둔다. 달리기의 마지막 승자는 첫 바퀴 1등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공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초기에 다양한 경험을 한다. 엡스타인은 이 시간을 '샘플링 기간'이라고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샘플링 기간'이 필요하다.


 샘플링 기간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익힌 사람들은 뒤늦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다. 뒤늦게 결정할수록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되고, 경험을 바탕으로 최상의 방법을 찾게 된다. 이전의 경험은 객관적으로 결과를 파악하고 피드백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 능력은 진짜 전문가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조금 늦더라도 충분한 검토와 검색기간이 필요한 이유다.


 분야를 정하고 빨리 시작하면 남들보다 기술적으로는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빨리 걸음마를 떼는 아기가 더 잘 달리는 것이 아니고, 빨리 말을 하는 아이가 더 언변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복잡한 가능은 복합적이고, 가장 느리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과학과 예술, 비즈니스에서도 통용된다. 직관은 충분한 경험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결국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여러 방면에 도전해본 제너럴리스트들이다.


당장 사업을 샘플링하자


 회사원은 사업을 샘플링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가졌다. '월급 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악의 조건도 가지고 있다. 회사를 오래 다닐수록 '훈수 두는 능력'이 심해진다.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본 것처럼 거드름 피우는 능력이다. 이는 샘플링 기간을 갖기 전에 반드시 버려야 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뷰 기사 몇 줄과 유튜브 영상으로 해당 분야 다 맛봤다고 착각하고, 모두 알아버린 듯한 생각에 도전을 포기한다. 제대로 연애해보지 않은 사람이 사랑에 정통한 것처럼 인터넷 댓글을 다는 셈이다.


 회사원이 샘플링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많다. 월급 외에 수동적 수익(Passive Income)을 원한다면 온라인 쇼핑몰, 전자책 등에 도전해볼 수도 있다. 서비스를 런칭하고 싶다면 코딩을 배워 홈페이지를 조금씩 만들어보거나, 다음 카페 등에 커뮤니티를 만들 수도 있다. 제품 개발을 하고 싶다면 주말을 활용해서 제품 디자인을 배워보고 시제품을 몇 개 만들어 온라인에 팔아볼 수도 있다. 무인 가게를 창업하고 싶다면 고객을 모으기 위해 제공하는 무료 창업 교육을 들어도 된다. 무엇이든 그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샘플링이 된다.


 새로운 것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과감하게 포기하면 된다. 회사원에게는 실패할 여유와 시간이 있다. 주말 동안에 회사 생각을 하지 말고 매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면 남들보다 빨리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회사 밖에서도 월급 이상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 겁먹을 필요 없다.


 자신이 찾은 분야를 퇴근 후, 주말마다 도전한다면 우리는 10년 후 아무 걱정 없이 퇴직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샘플을 만들자. 그리고 성공적인 하나를 찾아 우리의 '그릿'을 쏟아붓자. 그것이 진정한 아웃라이어가 되는 방법이다.





[참고자료]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3/article_no/10098/ac/magazine


[TED : 한글 자막을 지원합니다 / 책은 안 읽어보신 분들도 이 영상으로 충분하실 것 같아요.]

https://www.ted.com/talks/angela_lee_duckworth_grit_the_power_of_passion_and_perseverance/transcript?language=ko#t-119934


[TED : 영어 자막만 가능합니다 ㅠㅠ 하지만 요약된 주장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ted.com/talks/david_epstein_why_specializing_early_doesn_t_always_mean_career_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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