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부터 17세기의 유럽을 많은 이들은 '대항해시대'라고 부른다. 에스파냐의 콜럼버스는 아메리가 항로를 개척했고, 바스쿠 다 가마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거쳐 인도 항로를 찾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세계일주까지 했으니 많은 젊은 이들이 새로운 시대에 가슴이 뛸만했다.
물론 '대항해시대'는 유럽 본인들 입장이다. 아메리카나 아시아의 입장에서는 '침략의 시대'였다. 우리나라 교과서도 '대항해시대'라는 단어 대신 '신항로 개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찌 되었든 '대항해시대' 이후로 서로 존재를 알지 못했던 각 문명권들은 신속히연결되었다. 전 세계는 변화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 역시 대항해시대를 게임으로 배웠다. @KOEI
대퇴사시대가 온다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은 우리의 생각까지 변화시켰다. 4차 산업혁명은 정해진 미래처럼 보인다. '혁명'이란 모든 형태가 변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그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일'은 어떻게 변할까?
앤서니 클로츠 경영학 교수는 '대퇴사시대(The Great Resignation)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1년 5월 대규모 노동자 이탈을 예고했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미국의 퇴직자는 21년 8월 사상 최고 수치를 찍었고, 영국 역시 사상 처음으로 구인 일자리가 100만 개를 돌파했다. 일본의 인력난을 말할 것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자신의 업을 바꿨다.
경제가 안 좋은 팬데믹 시대에 대체 왜 사람들은 일자리를 그만둔 것일까? 이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직장에 대한 실망, 인생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전문가들 등을 원인을 꼽을 수 있다.
대퇴사시대가 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아직 일반화하기 이르다는 의견들도 있다. 통계 자료로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들이 많고, 모든 분야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HR(인적자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퇴사시대'가 왔음을, 적어도 곧 올 것임을 확신할 것이다. 코로나19 시대가 시작한 이례, 회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경기부양책을 썼고, 대한민국 역시 돈을 풀었다. 돈의 가치는 풀린 돈만큼 떨어졌고, 상대적으로 자산가치는 폭등했다. 전 세계 부동산 가격도 폭등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산과 물가가 오르는 동안 회사원들의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2020년 평균 노동자 연봉은 3,400만원이다. 대기업 회사원들이 퇴직까지 평균 연봉을 6,000만원 정도 받는다고 계산해보면(이것도 사실 후하다) 서울 평균 25평 아파트 12억짜리를 사는데 약 20년이 걸린다. 물론 숨만 쉬었을 때의 저축이다. "대기업에 들어와 이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 16년을 공부했는가?" 싶은 수치다
자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뛰면 노동의 가치는 떨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피부에 와닿는다. 퇴직할 때까지 벌어도 만족스러운 집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 심지어 윗 세대와 달리 근속연수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 우리가 굳이 월급 말고 회사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많은 이들은 월급보다 나은 길이 있다면 기꺼이 퇴사할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대퇴사시대를 앞두고 있다. HR사람들은 퇴사와 인재전쟁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바쁜 와중에도 세계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글로벌 인재 포럼 2021'을 열었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하나였다
힘들게 들어온 사람들이 왜 쉽게 나갈까
HR(인적자원) 분야의 권위자인 리스베스 클로스 명예교수는 "세계 근로자의 40%가 이직을 고려 중이며, 퇴사 열풍이다"라고 말했다. 팬데믹을 계기로 사람들이 일과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기업이 이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재 영입이 힘들어질 것이고,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HR이 변화에 무심했고, 직원 관리에 손 놓고 있었다는 지적도 함께였다.
실제로 HR에 근무해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사람들은 인사팀을 신뢰하지 않는다. 인사팀을 공정하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인사팀에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힘 빠지는 일이다. "위기다! 위기가 온다!" 매년 비상경영과 위기를 외쳐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만 양치기 소년이 된다.
인사팀은 매년 공정을 외쳤다. "여러분을 위한 겁니다! 공정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일이 그러지 못했고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인사팀도 깃털일 뿐 몸통은 따로 있다. 그들도 그냥 월급쟁이다.
인사팀 사람들도 개인은 착해요.. 전 재무팀이 무서웠어요
모든 팀의 회사원들은 월급쟁이일 뿐이고, 문제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경영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 경영자들이 이제 조금씩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유연 근무제 도입, 절대평가를 통한 보상, 승진 연한 폐지, 이 모든 것은 변화를 뜻한다. 인사팀의 '톤'도 변해간다.
뛰어난 경영자들은 이미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몇 년이 지나면 밀레니얼 세대(M)가 관리자, Z세대가 실무자가 되는 시대가 온다. 그때 선택받는 기업은 어디일까? 이제 사람들은 연봉을 조금 더 준다고 움직이지 않는다. 연공서열을 따지는 아시아형 근속 체제는 진작에 무너져버렸다.
퇴사자는 어디로 가는가
본격적으로 대퇴사시대가 도래하면, 퇴사자들은 어디로 갈까? 어떤 이들은 더 좋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길 것이다. 그 조건은 연봉보다는 근로시간, 복지, 겸업과 투잡이 자유로운 사내 정책 등이 될 것이다. 그들은 자유시간 동안 자립할 준비를 할 것이다.
이직하지 않는 이들은 월급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놨을 것이다. 그들은 사업 또는 투자 소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둘 다 준비하지 않고 퇴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 없다. 퇴직이 많아진다는 것은 구인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말이다. 회사는 '평생직장'이라는 단어와 더욱 멀어진다.
현재도 많은 회사원들은 월급소득 외의 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주머니는 딱 두 개다. 사업소득과 투자소득이다.
사업소득은 자영업이나 창업이 될 수도 있으며, 프리랜서로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될 수도 있다. 월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는 작업이다. 가족 명의로 회사 몰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슬슬 긱(Gig) 경제의 태동을 보인다.
투자소득은 지금 열풍이 부는 '파이어족'과 관계가 깊다. 투자에 대한 공부 열풍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투자 수단은 많다.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늘 그렇듯이.
내 시간만 갈아 넣으면 되는 월급소득은 지금도, 미래의 대퇴사시대에도 우선순위가 아니다. 대퇴사시대가 오면 회사원들은 회사원인 동시에 사업가이고, 창업가이며, 프리랜서 전문가가 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성공적인 투자자이며, 가계 경제 전문가가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해 우리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