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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문학도 Dec 22. 2021

다만 주5일에서 구하소서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루는 회사에서 '김영하 작가'님을 모시게 되었다. 두 시간짜리 특강을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특강 당일 새벽부터 나와 준비를 했고, 나는 작가님의 임시 비서 같은 일을 맡게 되었다. 도착하시면 장소로 안내드리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드리는 역할이었다. 덕분에 특강 내내 가장 앞에서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나만으로 먹고 살기는 어려운 세상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것이 예술이라면 더욱 그렇고, 그럼에도 예술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본인 이야기에 빗대 말씀하셨다. 나는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강의 중간에는 이 특강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말씀을 전해주셨다.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의 말이었다.

일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다
하며 피곤해지는 게 그 증거다

 사람들은 키득거렸다. 그렇지만 난 옆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왜냐면 당시 나는 매우 피곤했기 때문이다.


 미셀 투르니에는 소설가이자 5년 동안 방속국 PD였고, 10년 간 출판사 문학 편집부장이었다. 최소한 15년은 직장생활을 한 프로 회사원이다. 역시 그는 일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노는 것은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노는 것이 일이 되는 순간 피곤해진다. '일'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서 경제적 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 쓸모없는 '놀이'가 쓸모 있는 '일'이 되는 순간 피곤해진다.

 

모든 회사원들의 고민


 주4일 근무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용기 있는 자들은 피곤하지 않게 살기 위해 주4일 근무제를 주장했다. 말로만 존재했지 실현되지 못했던 '재택근무'가 전 세계에 정착한 지금, 주4일제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정부는 지난 4년 간 주4일 근무를 시행했다. 중앙정부의 주도 하에 주당 근무시간을 30시간대로 줄이는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사업장의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난 곳도 있었다. 근로자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은 줄어들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주4일 근무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 개선되었고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홍보했다.


 현재 스페인은 주4일제 정책을 실험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유니레버(회사)는 근무시간을 20% 줄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정부 차원의 주4일제를 검토 중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에듀윌은 주4일제를 공식적으로 시행했고, 카카오 게임도 일부분 주4일 근무를 도입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과 '여기어때'와 같은 플랫폼 기업도 근무시간을 40시간 아래로 조정 중이다. 이들은 40시간 아래로 근무를 해도 충분히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나 역시 40시간 이하로 근무해도 충분히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쓸모없는 일과 많은 회의, 결정자들의 우유부단만 줄여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4일은 좀 다르다. 하루를 근무하지 않아도 회사에는 큰 문제가 없을까?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

 주4일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높다.


언론은 주4일을 싫어해


 지난 11월 중앙일보에 기재된 기사에 따르면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여론조사 기관 미디어토마토) 응답자 48.5%가 주4일 근무제 도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도입 반대율을 높아졌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50% 이상이 지지한다는 말이다. 왜 기사를 이런 톤으로 쓴 걸까?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주 52시간 제도로 기업이 힘든데, 주4일제는 시기상조라고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다. 마치 주 5일제가 처음 시행되었을 때 반발하던 모습과 비슷하다.


2002년 경제단체의 주5일제 반대 광고 @한겨레


 경제 단체들과 보수 단체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들이 비용을 담당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주 5일제가 시행될 당시 언론들의 반발은 대단했다. 대체 그들은 왜 그런 것일까? 바로 기업이 언론사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광고가 주 수입원이다. 그리고 광고는 기업에게서 수주한다. 그러므로 '을'인 언론이 '갑'인 기업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공정한 척, 합리적인 척한다는 것이다. 의견을 사실로 포장하는 것이 그동안 언론이 해왔던 행태들이다. 주4일제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마치 회사원들이 손해를 보는 듯한 기사가 많았다 @미디어오늘


 여전히 많은 언론들은 주4일제가 도입되면 회사원들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조다.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호도하거나,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잘 들어보면 기업 대신 하는 협박이다. 물론 회사 운영을 기업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언론들은 자신들 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언론과 경제 단체들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근로시간 단축의 시대는 올 것이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며 GDP 순위 세계 10위의 나라다. 따라서 세계적인 경영 변화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전 세계는 고용 유연성을 바탕으로 근로시간 단축, 이직과 전직의 강화, 아웃소싱 증가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4일제가 빨리 정착되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삼성이 주4일제를 시행하면 된다. 그럼 나머지 회사들이 모두 따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인재들이 죄다 삼성으로 몰려갈 테니 말이다.


대체 주5일제는 왜 시작한 걸까


 주4일이든 주5일이든, 이런 제도를 대체 왜 시작한 걸까?

 주5일제 시행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공장이 신나게 가동되던 19세기 영국에서는 5일을 일하면 일요일과 월요일에 쉬었다. 토요일까지 밤을 새더라도 일을 끝마쳤고, 일요일은 안식일이니 예배를 드렸다. 그다음에 주어지는 휴일 하루가 월요일이 된 것이다.


 월요일은 '성스러운 월요일'이라고 불렸다. 유럽의 공장들은 영국을 따라 월요일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공장주들은 월요일에 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요일 휴식은 공식 유일은 아니었다.


 종교단체와 노동조합은 쉬는 날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종교단체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토요일에 쉬면 더 많은 이들이 좋은 컨디션으로 교회에 올 수 있을 테니, 토요일을 휴일로 삼자는 의견이었다. 노동조합은 아예 공식으로 정하자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일은 싫다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


 이번에는 공장주들과 자본가들이 머리를 굴렸다. 토요일에는 반일 근무를 하자는 의견이었다. 토요일 전체를 쉬면 다들 술에 찌들거나 방탕하게 놀 테니 '출근을 하게 되면 술을 안 마실 테고, 성실한 노동력을 유지할 것'이라면 주요 엘리트들과 정부를 설득했다. 노동자들도 이에 동의했다. 보통 토요일은 밤늦게, 혹은 새벽까지 마감을 했는데 오전만 근무하고 보내준다는 것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토요일 오전 근무는 제도화되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역시 토요일 오전 근무를 했다. 토요일 오후는 '이상적인 여가 시간'이 되었다. 소비는 늘고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의 생산성이 높지 않자 주5일제 논의가 등장했고 2004년 정부의 주도로 시행되었다. 기업가들은 앓는 소리를 했지만 주5일제는 더 많은 고용과 높은 생산성을 가져왔다. 19세기 자본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낮부터 술에 찌들어 살지 않았다. 회사원들은 여가를 즐기고 자기개발을 하고 가족을 챙겼다.


21세기는 자기개발 시대다


 주4일제가 시행된다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생산성에 자신 있는 기업들은 인재 유치 차원에서라도 주4일제를 시행할 것이고, 승진과 연봉 상승을 챙겨주기 어려운 기업들도 차차 이에 합류할 것이다. 주3일의 여가시간이 생긴 회사원들은 회사 밖에서 생산적인 일을 할 것이다. 더 많이 운동하고, 더 많이 창업하고, 더 많이 자기개발을 할 것이다.


 게다가 MZ세대는 자기개발의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자기소개서조차 학원에서 배우는 세대다. 모르는 정보를 찾고, 나보다 나은 누군가에게 배우길 꺼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하루 더 주어지는 휴일은 자연스럽게 자기개발 시간으로 쓰일 것이다.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회사원들은 대부분 뭐든지 하긴 한다 @사람인/뉴시스


 이미 금요일 야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다들 금요일에는 표정이 좋다. 유연근무제를 허용한 회사에는 금요일 오전만 근무하고 퇴근하는 이들도 많다. 금요일이 점차 20년 전 토요일처럼 되어가는 셈이다.


 우리도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트렌드를 인식하고 이에 동참해야 한다. 여가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을 기획해둬야 한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기획을 해두어야 행동할 수 있다. 출퇴근길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 준비도 해두지 않으면 우리는 '업글 인간'과 점점 멀어질 것이고, 회사를 떠났을 때 '다운글' 인간이 되어있을 것이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524197&plink=ORI&cooper=NAVER


https://newsis.com/view/?id=NISX20210510_000143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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