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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Jul 29. 2018

여행의 낭만을 꿈꾸는 당신에게   

대한민국_어느 캠핑장

개구리 소리 가득한 냇가를 앞에 두고, 밤새 가끔 울어주는 부엉이 소리를 들어가며 하늘에서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는 낭만의 밤을 꿈꾸며 떠났는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못다 읽은 책이라도 보며 여유를 부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비가 내려도 상관은 없다.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여름에 즐기는 따뜻한 커피 한 잔도 꽤 운치 있으니까. 

캠핑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로망에 대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캠핑에 낭만이라는 게 있는 걸까?


하룻밤을 위한 이사


캠핑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짐을 싸들고 가야 한다. 요즘 캠핑에서 텐트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캠핑’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텐트가 준비되었다면 텐트 안을 채울 침낭과 울퉁불퉁한 바닥을 푹신하게 해 줄 매트도 필수다. 더욱 편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침대는 옵션이다.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겨우 마련되었다면 정원이 필요하다. 뜨거운 햇빛과 혹시라도 비가 오면 비를 가려 줄 거대 천막 타프가 그 역할을 한다. 타프가 가려주는 자리만큼 우리 집이 되는 셈이다. 그늘이 만들어졌다면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어야 한다. 의자는 가족 수대로 있어야 자리싸움이 나지 않는다. 

집도 있고 정원도 있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먹을 것을 만드는 부엌 차례이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비롯해 집에 있는 부엌살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다고? 그럴 필요 없다. ‘키친 테이블 ’이 있다. 마치 싱크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도 하고 정교한 어린이용 소꿉 세트 같은 키친 테이블은 미니 조리대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두 개의 화구가 있는 버너는 따로 사 넣어야 키친 테이블이 완성된다. 캠핑장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을 포기할 수 없다면 ‘화로대’도 챙겨야 한다. 사각 좌식 테이블 가운데 숯으로 화로를 피워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식탁이 화로대이다. 이렇게 캠핑에 필요한 큰 집을 챙겼다면 밥그릇, 숟가락, 먹을거리 등등 소품은 개인의 취향에 맞게 준비하면 되겠다. 


아참, 이 모든 것들을 모두 구비했다면
당신은 이미 최소 300만 원 이상의 돈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웬만한 중형차라면 이 짐을 다 실을 자리가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앉을자리도 부족하게 짐을 끌어안고 캠핑장으로 향하며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SUV로 바꿀 테다.
아니 이참에 캠핑카를 살까?


겨우겨우 짐을 실으며 이미 땀을 한 바가지 흘렸지만 아직은 설렘이 남아 있다. 

캠핑의 낭만이 이 모든 수고를 보상해 줄 것이므로. 





드디어 도착한 캠핑장. 

오는 동안의 길 막힘 따위는 언급도 하지 않겠다. 어쨌든 도착은 했으니까. 멀리서 캠핑장이 보인다. 텐트들이 듬성듬성... 아니다 캠핑장 가득 빽빽하게 들어찬 저 돔들은 분명 텐트? 


이건 캠핑장이 아니라 흡사 난민촌이다. 
망했다!


텐트 사이를 비집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옆 텐트와의 거리는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다. 밤에 누군가 코라도 곤다면 주변의 텐트는 잠자기도 힘들 것 같은 민망한 거리다. 맡아 놓은 자리를 누가 뺐을까 짐 가방을 벗어두고 차에서 바리바리 싸온 짐을 가져오기 시작한다. 

늘 그렇듯이 캠핑장과 주차장을 참 멀다. 한낮의 뙤약볕에 땀을 쏟아가며 꾸역꾸역 짐을 부려놓으니 이건 흡사 집 한 채를 옮겨놓은 것만 같다. 이걸 어떻게 펴고 세워야 제구실을 할 것인가. 캠핑은 시작도 안 했는데 한 3박 4일 훈련이라도 받고 온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이들은 벌써 배고프다고 난리. 우선 과자 부스러기를 쥐어주며 조금만 참으라고 달랜다. 



해피엔딩은 없다


그 후 제대로 된 텐트를 세우고 그제야 캠핑의 참 맛을 느꼈다는 해피엔딩은 일어나지 않았다. 

촘촘하게 세워진 텐트 덕분에 바람도 통하지 않아 우리 집 에어컨을 그리워했음은 물론이요, 밤새 떠드는 젊은것들의 고성방가에 더더욱 잠 못 드는 밤이었다는 새드엔딩이 안타까울 뿐이다. 

게다가 밤새 열린 공중 화장실 문에서 흘러나오는 구린내를 호흡하며 누워 있었다는 건 너무 슬퍼서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바로 다음날 어렵게 세운 텐트를 (타프는 펴지도 못했다. 좁아서.) 처덕처덕 접어 트렁크에 실으며 이런 말을 했다지. 


내 다시 캠핑을 가나 봐라! 내년에는 럭셔리 리조트 여행을 갈 테다!


그저 밖에서 자고 먹고 색다를 경험을 원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캠핑에 낭만 따위 기대하지 말자. 난민촌에서 낭만이 뭐고 야생이 뭐란 말인가. 아 싫다 싫어.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이런 나를 까맣게 잊고 내년 이맘쯤 럭셔리 리조트 여행의 환멸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을지 말이다. 

아아, 어쩌면 나는 여행 따위 어울리지 않는 투덜이 일 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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