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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작가 Jun 26. 2020

니 새끼 니나 예쁘지!

워킹맘의  온 앤 오프  타임

15개월짜리 아기 엄마인 그녀가 출산 후 처음으로 출근했다며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 한마디에서 나는 출근하느라 오랜만에 혼자 나선 설렘과,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며 눈물을 흘렸을 것만 같은 초보 워킹맘의 비애까지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예전에 그랬으니까.


축하해요!

나는 이 말을 오랫동안 연습했다. 

누군가 출산 후 복귀를 한다면 나는 꼭 축하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줄 거라고 항상 다짐했다. 


내가 출산 후 이제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을 했을 때 주변에서 한결같이 '고 어린것을 두고 어떡하려고' 또는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사정 모르는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동네에서 사귄 또래 아기 엄마 친구들도 그런 말을 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응원받고 축하받을 줄 알았던 '워킹맘'으로서 첫출발은 걱정해준(?) 그들 덕분에 죄책감으로 범벅이 되었다. 게다가 두 돌이 안된 아이가 어린이집 가방이라도 메고 지나가면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던 할머니들이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그 길을 지나가곤 했다. 

수십 년 전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다. 그래서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내 주변의 누가 출산 후 직장으로 복귀한다고 하면 나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축하부터 해야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줘야지. 


그렇게 나의 응원과 축하를 받은 그녀는 한껏 상기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곧 일에 적응했고 꽤 능력 있는 구성원으로 회사일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우리 애가 어제 넘어지지 않고 2미터나 걸었어요! "

"요즘 아이가 이유식을 안 먹어요. 어떡하죠?"

"이것 좀 보세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나는 모든 워킹맘을 응원하겠노라, 이미 10년 전부터 마음을 먹었지만 이건 응원과는 좀 다른 이야기였다. 그동안 임신과 출산, 육아에 전념하던 그녀는 아직 아이에 올인하던 '올데이 엄마 모드'를 직장에서도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관심사와 모든 대화 주제, 심지어 모든 대화의 결론은 본인의 아이였다. 

이게 처음에는 '정말? 어머! 귀엽다!'라고 대답해줄 수 있지만 하루 종일 그럴 수는 없는 일. 다른 사람들도 슬슬 지겨운 듯 못 들은 척하거나 은근슬쩍 이야기를 다른 화제로 돌리는 게 티 났다. 

사무실에 아이 엄마는 그녀 말고는 나뿐이었으므로 그런 그녀를 이해해줄 사람도 나밖에 없다고, 걸음마를 시작하고 '2미터씩이나' 걷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는 건 나밖에 없었지만 나 역시 쉽지 않았다. 


니 새끼 니나 예쁘지!

이런 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웃겨서 막 웃다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눈치도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내 얘기만 했던 건 아닌지 생각해보니 백 퍼센트 그러고도 남았을 거라 생각하니 더 이상 웃음이 나지 않았다. 


그래, 내 새끼는 나만 예쁘지 뭐.


올데이 엄마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녀가 갑자기 워킹맘 모드로 바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는 엄마, 밖에서는 직장인으로 어떻게 스위치 올리듯 온오프 될 수 있을까. 안에 있으면 밖이 걱정이고 밖에 있으면 안이 걱정인, 그래서 걱정인형이 필요할 지경이 되는 게 워킹맘의 현실인걸.


10여 년 전 듣지 못했던 축하 인사에 한이 맺혀 내내 연습했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따뜻한 말 한마디를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온오프 스위치를 만들어 줄 말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녀가 '니 새끼 니나 예쁘지.'라는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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