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작가 Apr 14. 2019

엄마와 벚꽃  

보고싶어서 꽃비처럼 눈물이 날 때 

벚꽃이 막 피고 지는 요즘 같은 날이면 설렘보다 뭔가 모를 슬픔이 피어나는 건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분이 든 건 엄마가 떠난 이후부터이다. 


엄마가 떠나기 한 해 전 봄, 딱 이맘때쯤이었다. 

그날따라 흐드러진 벚꽃이 눈에 들었고 어쩐지 이런 날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꽃구경이라도 갈까, 했을 때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랑 꽃구경을 가는 게 내 딴에도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그해에는 엄마랑 꼭 한번 가보고 싶기도 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감지했던 걸까. 


"꽃구경? 집 앞에 많이 피어서 매일 보는데?"


엄마는 여의도 윤중로에 꽃을 보러 가자는 내 말에 매일 보는 꽃 뭐하러 거기까지 가서 보냐고 했지만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엄마도 딸이 꽃구경 가자는 말이 의외였을 것이다. 얘가 웬일이야? 했을지도 모른다. 


딸아이 유치원까지 쉬고 3대 모녀가 여의도로 꽃을 보러 갔던 그 날. 평일이었지만 여의도는 꽃송이만큼이나 사람들로 붐볐고 떨어지는 꽃비 속에 우리들도 기꺼이 꽃놀이에 동참했다. 여기 서봐, 저기 서봐, 하는 엄마의 말에 에이 뭘 사진을 찍어, 하면서도 꽃송이 아래 엉거주춤 서서 포즈를 취했던 나와 윤서야 할머니랑 같이 찍자, 솜사탕 사줄까? 하며 손녀딸의 손을 놓지 않았던 엄마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 이거 한 장 찍자!"


엄마가 DSLR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인화해주는 아저씨를 보더니 말했다. 누가 저걸 돈 내고 찍나 했더니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찍는구나. 뭐하러 거기까지 가서 꽃구경을 해, 했던 엄마 맞아?


"핸드폰으로 많이 찍었는데 뭐하러."

"우리 셋이 찍은 거 없잖아."

"지나가는 사람한테 찍어달라고 하면 되지."

"그래도 그거랑 같니? 여기까지 왔는데 한 장 찍어서 걸어두자."


옥신각신하는 사이 엄마는 사진사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사진 찍을 위치까지 정하고 있었다. 한 장에 오천 원이었나, 만원이었나. 한 장만 뽑으래도 굳이 두장을 뽑아달라고 말하는 엄마. 

우리 3대 모녀는 쪼르르 윤중로 한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었다. 지나치게 아웃포커스 되어 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벚꽃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지었던 사진 속의 엄마. 나는 그게 뭐가 창피하다고 환히 웃지도 않았을까.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고는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겨우 1년이 지난 후에는 엄마가 없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런 거라면 사진을 두장이 아니라 열 장 스무 장이라도 찍어 가져올걸. 엄마를 타박하지 말고 맘껏 웃으며 포즈를 취할 걸. 엄마의 마지막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 함께 했던 그 순간만이라도 더 진하게 남겨 놓을 걸. 벚꽃을 볼 때마다 부질없는 후회를 한다.


친정집 거실에는 여전히 그날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엄마는 그 사진을 가져온 그날로 액자에 넣어 걸어놓았다. 뭐하러 거기까지 가서 꽃을 보냐던 엄마가 사진을 걸어놓고 아빠에게, 놀러 온 친구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갑자기 딸애가 벚꽃을 보러 가자고 하길래 갔는데 꽃이 너무 이쁘더라고... 하면서.  


7살의 손녀는 6학년이 되었고, 뜬금없이 꽃놀이를 하자던 딸은 마흔이 넘었다. 오직 엄마만이 그 날 그대로 벚꽃처럼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벌써 몇 번이나 피고 지는 벚꽃 사이로 나도 남들처럼 설레는 척했지만 꽃비처럼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보고 싶은 엄마. 환히 웃는 사진 속 엄마가 그리워서.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이 내리면 도시는 빛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