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요나 Jan 26. 2019

나에게 맞는 옷은 따로 있었다

청바지 입어보려다가 나를 알게 되다.

난 옷을 좋아한다. 아니 꾸미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패션에 민감하거나 옷을 잘 입는 편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나에게 맞는 옷을 고르는 데에 상당히 까다롭다. 그래서인지 고르다가 못 사거나, 고르는 데 드는 시간이 아까워서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옷을 그냥 사기도 한다.


 어쩌면 나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지 잘 못 찾는 패션감각이 아주 부족한 쪽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거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모델핏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저주받은 하체와 팔다리 길이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애니웨이.

직장을 다닐 때에는 펜슬 스커트에 블라우스가 교복이었다. 오랜 시간 탐색 끝에 나에게 젤 잘 어울리는 오피스룩이라고 생각했기에 다음부터는 고정된 스타일대로 옷을 샀다. 그 옷들을 사느라 바쁘고, (물론 다 사려면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정작 캐주얼한 옷들은 잘 사지 못했었고 특히 '청바지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라고 생각해 왔었다.

미국 생활을 시작하니 다양한 디자인들의 청바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밑단을 그냥 잘라 버린 듯한 헴 스타일?이나 여러 군데 찢어 놓은 디스트레스트 룩. 청바지 하면 스키니진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다가온 세미 부츠컷 진들. 물론 한국에도 이런 스타일들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내가 청바지는 그저, 어쩌다 봉사활동 갈 때 입는 옷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청바지에 눈을 뜨게 된 건 미국 생활을 시작한 최근 2년 사이가 진짜 진짜 처음이다.

버뜨.. 새로운 패션을 시도하면 늘 그렇듯 시행착오라는 것을 겪게 된다. 온라인 쇼핑을 즐겨하는 나에게... 새로운 패션의 시도란. 나는 불타는 인터넷 서칭과 환불을 반복해 가며. 그로 인한 상당한 출혈을 감당하며 내게 맞는 청바지들을 찾아냈다. 뭐, 열개 중 한두 개 정도는 나에게 어울리는 편이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환불하거나 중고시장에서 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간신히 찾은 그나마 어울리는 청바지들. 그런데 이번엔 맞지 않는 사이즈 때문에 억지로 나를 구겨 넣고 있는 비참함을 직면해야 했다. 허벅지에 맞춘 사이즈를 사면 배가 너무 답답하고, 허리와 배에 맞추면 핏이 안 이쁘다.. 그래서 미국은 Mom's jean도 많이 나오는데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고 구매를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해볼걸 그랬나..?)

아무튼 핏이 예쁜 작은 사이즈로 주문을 하고는, 답답해서 못 입겠다. 옷장으로 직행.. 보기에는 이쁜 옷이어도 답답하면 입지 않게 되더라.

결국. 몇 번의 출혈과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 나에게 맞는 옷은 청바지가 아니더라... 남이 입은걸 보고, 또는 모델핏이 이뻐서 지름신 강림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옷은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도 이와 같이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일이 진정 내일은 아닌, 무언가 불편하고 억지로 나를 구겨 넣은 느낌이 든다면 과감히 버리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15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나는 불편하고 답답했었다. 남들이 보기엔 번드르르한 화려한 직장, 연봉 높은 커리어 우먼. 그런데 그 일들이, 직장에서의 생활이, 인간관계가. 숨 막히고 위축되었었다.


남들에게 나만의 고유성을 드러내면 그것이 내 옷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말수를 줄이고 남들이 하는 말에 공감하는 척하고 소위 말하는 '있는 척' 하는 것이 점점 당연해졌다. 펜슬 스커트를 입었고 그 옷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었지언정 타이트하게 허리를 조여야 하는 탓에 만성 소화불량을 호소했었다.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지금의 나는 화려한 옷, 꽉 조이는 옷은 입지 않는다. 입을 필요도 없다. 덕분에 소화불량은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패션을 멀리할 생각은 없다. 나에게 맞는 캐주얼 옷을 찾아서 예쁘게 입어 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어쨌든 청바지는 나에게 맞는 옷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무슨 옷이 어울리나요?하하)


나에게 맞는 옷과 맞지 않는 옷을 구분할 줄 아는 것, 나에게 맞는 일과 맞지 않는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것.

남들이 보기에 멋지고 화려한 일일지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를 갖는 것.
그리고 그 멋지고 화려한 일이,,, 나의 일이 아니라는 것까지도 알아채릴 수 있는 것. 그런 마음의 감각과 눈을 갖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사진에 찍힌 자신의 모습이 진짜라고 여기지만 그것조차도 왜곡되고 진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마음의 모습은 더욱 그러하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도 없을뿐더러 처음부터 마음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내가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왔었다는 것을 좀 더 일찍이 그걸 깨달았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아니, 깨달았다는 표현은 너무 거창하다.

내일은 또 어떤 누추한 모습으로 헤매고 있을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걸음마 살짝 떼고, 옹알이 연습한다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오겠지.! 


 통 넓은 '치마 바지' 가 세상 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보다 빨리 가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