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고향 통영

(청마 문학관- 통영 옻칠 미술관- 전혁림 미술관-박경리 기념관))

by 파랑새 앵선

(몇년전 남해 한 달 일기를 꺼내어....)


청마 문학관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 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 중략.....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유 치환의 '깃발'


고등학교 시절, 모든 이들의 애송시가 아니었던가? (1908-1967) 통영시 태평동에서 태어난 그는 통영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하여, 동래 보고를 졸업하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문단에 데뷔하였다. 부산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주기 20일 전에 썼다는 그의 마지막 글

"세월이 흘러 가는 게 아니라,

세월은 가만히 강의 하상(河床)이나 똑같이 가만히 있는데,

거기에 실린 인생이 주마등처럼

잘도 흘러가는 것 인지도 모른다....."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다-에서

작가 김동리는 그를 기리며 '고독한 사자'라고 표현했다.

"청마형!

형은 말이 없던 사람, 누구와도 미워하고 원망하고 다투려 하지 않던 사람, 끝내는 착함마저도 벗어던지려던 사람! 아! 아!~~ 사람보다는 훨씬 더 천지(天地)와 더불어 대화하던 사람......

실상 그다지도 멀지 않은 이 강을 건너 다시 만날 때까지 마음 놓고 가소서....

- 1967.2.17 중앙일보-

김동리의 깨끗하고 담백한 성품이 묻어나는 추모의 글이다.


통영 옻칠 미술관

옻칠은 천연 광택과 장식성이 뛰어나며, 방부, 방습, 단열, 방충 작용들을 하는 무공해 천연 재료이다. 통영 옻칠 미술관은 김성수 관장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옻칠과 함께 반짝이는 자개들이 천년이 가도 변하지 않을 모습으로 조개껍질마다 다른 저만의 색깔을 내면서 전통 작가들의 손을 거쳐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작품 작품마다의 숨결이 느꼈다.

작품 하나라도 품으면 좋으렸만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묻지도 못한 채.....


전혁림 미술관

미술관에 오기까지 솔직히 작가에 대한 아무런 상식이 없았다. 통영의 피카소라 불리는 그의 미술관은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빛이 건물 전체를 감싸며, 계단 난간의 푸른 손잡이가 그의 작품을 빨리 보고 싶도록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였다.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터치와 색상은 작가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짜임 있는 구도가 안정감이 있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피카소적인 그림이다.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는 나의 느낌 그대로 해석하며 감상하다가, 그의 아기자기한 도자기에 그린 그림에 또 한 번 매료되었다. 작가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도자기 작품은 정말 갖고 싶고, 가보로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작품이다.


















박경리 기념관

박경리를 모르고 어찌 한국 문학을 말하겠는가!, 김약국의 딸들, 토지 등 우리나라의 전쟁과 양반사회, 격동의 물결, 그 가운데 일어나는 가문의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가슴을 따듯하게 한 글들이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중에서 -

특별히 이 글이 와닿는 것은 내가 지금 딱 그렇게 느끼는 나이인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지나간 청춘은 너무 짧았다. 다시 돌아온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세월을 보내지 않을 터인데, 주위 사람들이 더 애가 타서 나에게 무엇인가 해보라고 그렇게도 권했건만, 그저 사는 게 급급해서, 애 셋 키우기가 넘 힘에 부쳐서, 까다로운 남편 맞추기가 너무 버거워서, 내가 세상에 나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야 하는 부담이 너무 커서....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며, 두려워하며, 망설이다가, 그 짧은 청춘은, 그 짧은 세월은 기다리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박경리 공원을 들어서니, 무덤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붉은 단풍이 뚝! 뚝! 떨어져, 걷는 이의 마음조차 슬프다. 거목의 죽음과, 더 이상 선생의 새로운 글을 접할 수 없음에 단풍의 붉은색이 나를 찌른다. 떨어진 단풍잎을 책갈피에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싶어서 열심히 예쁜 잎을 고르며 줍는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 그때는 또 이 시간이 젊은 날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겠지? 시간은 자꾸 등 뒤로 멀리, 아주 재빠르게 달아나 버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시간이 지남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쉬움과 함께 길을 오르니 아담한 무덤 하나, 소박한 무덤이 멀리 통영 바다를 안고 가을을 머리에 이고, 편안히 안식하고 있다.

토지의 서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카랑카랑한 그 목소리로 그 집안을 이끌며,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던 사랑을 가슴에 묻으며 살아갔던 그 세월들이 바람이 되어, 하늘의 구름이 되어, 소박한 무덤 위 잠시 머물며 선생님께 안부를 전한다.

나도 조용한 존경을 표한다.

선생님!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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