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진도와 매물도

(그 섬에 가고 싶다)

by 파랑새 앵선

(몇 년 전 남해 한 달 일기장을 꺼내어....)


산새들이 부르는 비진도 산호길!

통영에 오기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섬!


비진도

'미인도'라고도 하며,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비진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안섬(내항)과 바깥 섬(외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섬 사이에는 지주가 형성되어 마치 손잡이가 짧은 아령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외항에서 내항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비진도 해수욕장이 있고 오른쪽은 자갈밭 해안길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미륵도 달아길, 한산도 역사길, 연대도 지게길, 매물도 해품길, 소 매물도 등 대길, 등 통영의 6개 섬에 조성한 바다 백리 길중 으뜸인 산호길이다.

비진도의 바다가 산호처럼 푸르고 아름답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지나가는 섬사람의 안내로 우리는 선유봉을 향하여 3.2Km의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완만하게 섬 둘레를 걸을 수 있게 조성된 길은 그 어느 섬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정돈되어 있었고, 흙길들이 잘 보존되어 걷기에도 너무 편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산새 소리를 들으며, 야생화들을 보고 걸을 수 있으니 너무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은 잘난 자, 못난 자, 권력 있는 자, 권력 없는 자, 부자, 가난한 자들 따지고 차별 하지만 자연은 그저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마음을 열게 하며, 사색할 수 있게 해 주니 하늘이 주신 선물임에 감사한다.

1Km를 채 못 걸었는데 비진암이란 팻말이 나온다. 오래된 암자를 볼 수 있으려나 반가운 마음에 올라갔으나 허술하게 지은 절 모양의 작은 건물에 비진암이라 쓰여있고 문은 자물쇠로 잠가 들어갈 수 없었다.

고찰을 좋아하는 나는 실망감에 발길을 돌려 다시 오른다.

나무숲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고, 유난히 많은 산새들의 소리가 합창을 이루고 있다. 새소리도 여러 가지 종류이고,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것 같은데. 청아한 소리, 약간 탁한 소리, 하이 소프라노, 여기에 저음인 까마귀까지 가세하여 한데 어우러지니 산속의 합창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 많고 아름다운 산새 소리를 듣다니, 나에게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다시 또 헉헉거리며 땀을 흘리며 오른다. 산을 오를 땐 언제나 너무 힘들지만 오른 후의 그 기쁨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또 오른다.

갈치 바위 또는 슬핑이치라는 팻말이 나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갈치 바위는 보이지 않아, 설명을 읽어보니 갈치처럼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태풍이 불 때마다 파도가 이 바위 위로 넘나들면서 소나무 가지 위에 갈치들을 걸쳐놓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 드디어 선우봉(해발 313m) 정상이다. 비진도에서 가장 높은 정상! 그러나 다른 정상과는 조금 다르다. 정상에서 먼바다까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망대에 올라가야만 볼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자마자 잠시 주저앉는다. 긴 호흡을 하고, 먼 곳을 바라보며 잠시 머리를 식히고 하늘을 보니 많은 구름들이 하늘을 떠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중략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마음의 노래가, 그리움 되어, 하늘의 구름이 되어, 아주 먼 기억 속으로 흘러가며, 다시 힘을 얻어 내려온다.


흔들바위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반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곳에 살다가 하늘로 올라간 선녀가 섬에 홀로 남은 어머니의 식사가 걱정되어 땅으로 내려 보낸 밥공기 모양의 바위가 흔들바위란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애틋한 마음의 전설이 많다. 흔들바위를 지나오니 비진도에 서 가장 전망이 뛰어나다는 미인 전망대가 땀을 식혀준다. 한눈에 보이는 안섬과 바깥 섬을 이은 모래사장과 자갈밭 해안길, 산호색과 같다는 푸른 바다와 내 마음의 바다가 한데 어우러져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다시 내려오니 이번에는 더 슬픈 전설의 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무지개를 타고 내려온 선녀가 효성이 지극한 한 남자를 사랑하여 살다가, 고기잡이 나간 배가 풍랑으로 돌아오지 않자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매일매일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바위가 바다를 바라보며, 변하지 않는 사랑과 모습으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 매물도


"통영 8경"

"물길 열리는 등대섬"

듣는 것만으로도 스릴 있고 아름다운 섬이다.

기적처럼, 썰물과 밀물의 시간에 따라 70m 정도의 자갈길이 등대섬과 연결된다.

매물도는 섬에 들어와 개간하여 처음 심은 작물이 메밀이었다. 여기에 경상도 사투리모 메밀 매물, 하다 보니 매물도가 되었다 하는데 지금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고, 메밀밭은 보이지도 않는다.

배에서 내려서 한참 가파른 동네 언덕길을 오른 후, 끝도 없는 계단 내리막 길이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 등대길이 보이고.... 한참을 내려가니 물이 빠진 자갈길이 모세의 길처럼 열려 있다. 큰 돌 작은 돌들을 요령껏 잘 밟고 징검다리 건너듯 건너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작은 골짜기에도 물이 많아 항상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 깡충깡충 뛰듯이 하나, 둘, 셋, 나도 모르게 셈을 하며 건너다니 생각이며, 특히 교회 앞 냇가는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 비가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너무 많아서 콸콸 쏱아붓듯 흘러, 징검다리 건너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소리 내며 물결치듯 흘러내리는 물살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늦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다리는 놓여 있지만 징검다리 건너는 게 재미있어서이다.


다시 오르는 계단 맨 위에 하얀색 등대는 말없이 우뚝 서 있다.

파란 바다 위에 하얀 등대!

사방으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안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많은 고깃배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는 둥그럽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곳까지 힘들게 이 등대를 보러 왔나?

내 마음의 등대를 찾아서?

나의 순수를 찾아서?

이렇게 힘들고 힘든 벼랑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려고?

갖가지 상념들 속에 그래도 먼저 떠오르는 건 감사!

이 시간이 있게 해 준 주님께 감사!. 그리고 모든 이에게 감사! 시간이 흘러 이 시간의 고달픔은 잊어버리고 멋진 등대와 남편과의 기억만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몸 전체로 깊게 호흡한다.


선착장으로 향한다.

거의 다 내려오는 길목에 새우랑 멸치 등 많은 건해산물을 파는 곳에서 예쁜 홍새우와 큰딸이 좋아하는 톳을 사고 보니, 바로 그 옆에 주름이 기득 한 할머니가 물건을 팔고 있다. 방금 많이 사서 살 것도 없건만 할머니의 주름진 그 얼굴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다시 지갑을 연다.


통영으로 배가 저 멀리 뚜 하며 들어오는 찰나, 갑자기 소나기가 후드득 떨어진다. 사람들은 텐트 밑으로 비를 피하여 뛰어가는데 난 그저 바다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나의 삶에 갑자기 떨어지는 소낙비가 있다면 피할 것이 아니라 묵묵히 맞으며 잘 견디어 내야지....

주님이 함께 하실 테니까....

소 매물도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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