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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 앵선 May 08. 2023

울 엄마

<'앵선씨의 제주 한 달'> 책에서


조용하게 스며드는 햇살이

올해 처음 담가보는 된장 항아리에 앉아

엄마의 추억과 사랑을 불러옵니다.


무명치마에 희끄무레한 낡은 스웨터를 걸치시고,

오늘같이 햇볕이 쨍쨍한 날 앤

장독대의 모든 항아리들을 열어 놓으시고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지금 내가 된장을 담가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어쩌면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된장 항아리에서 위안을 찾을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마음이, 이제야.......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진 울타리 옆에 있는 장독대는 

우리 집 살림 모든 것을 보여 줬습니다.


텃밭에서 따온 오이랑 호박이 그곳에서 뒹굴었고, 

보라색으로 익은 가지가 너무 탐스러워서,

엄마 몰래 한입 베어 물다가 들킨 장소도 그곳이었습니다.


가을이면 시래기가 울타리에 내 걸리고,

채반에는 호박과 가지랑 여러 가지 나물들이  햇빛에 널어져 

겨울 반찬 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겨울이면 장독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보고,

얼마만큼  간밤에 눈이 왔는지 헤아리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나무 울타리 옆에 있는 장독대에서는,

엄마가 안 계실 때는 빈 항아리처럼 엄마 찾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계실 때는 무언가 가득히 익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쩜 항아리의 무늬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해서.

암마가 살아 계실 그때처럼, 그대로여서.......


항아리 사이로 무명치마를 휘감으며,

뚜껑을 열어보고, 손가락으로 꾹! 찍어 된장 맛을 보실 것만 같습니다.

엄마가 다시 온다면 항아리 백 개라도 사다 놓으련만.....


흰나비 한 마리가 오늘도 장독대 주변을 맴돌며,

꽃들을 순회합니다.


울 엄마는 혹시 꽃이 되셨을까?


울 엄마는 혹시 나비가 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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