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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Sep 09. 2023

또 하나의 이별

유난히 덥고 숨 막혔던 올여름은 그 뒤끝마저 길다.

아직은 떠나기가 아쉬운지 미련을 못버리며 맹렬한 기세로 다시 더워진 며칠 전.


띵동!!

문자 하나가 도착을 했다.

누구인가 보니 그동안 일주일에 한번은 마주했었던 거래처 문구도매 사장님의 문자였다.


이 사장님과의 인연은 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한가한 시간에 동그란 얼굴의 인상 좋은 사장님이 직접 문구점을 찾아와 본인 소개를 하고, 본인이 취급하는 물건 리스트를 주고 가셨다.

다른 곳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에 직접 배달까지 해 주셨기에 웬만한 사무 용품과 문구류는 이 거래처에 주문을 해 왔었고 일주일에 한번은 늘 사장님을 만나 왔었다.


4년 동안 코로나라는 파도를 이겨냈고, 그 이후의 불황도 같이 겪어 나가서인지 나름 동료애가 쌓이기도 했다.

 배달을 오실 때마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던 분이셨다.


그런데, 이번에 문구 도매를 접는다는 소식을 문자로 보내온 거였다.

그동안 감사했고, 건강하고 사업 번창하시라는 문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코로나가 끝나 이제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은 현실과 다르게 나타났다.

요즘 매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저조한 걸 보면 경제 불황이 확실한 모양이다.

매년 사람들은 불황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동안은 피부에 그렇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는 불황이라는 녀석이 나를 잠식해가고 있었다.

물가는 올라가고, 매출은 줄고, 가게 월세마저 올라간 상황이다.


7월 매출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8월 매출은 그보다는 올랐지만 작년 코로나에 비해서도 떨어졌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알아보니 근처에 무인 문구점이 생겼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처음 오픈했을 때의 학생 수가 1500명이었는데, 지금 학생 수는 1078명으로 줄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많은 고민이 있었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문구점을 여기서 접는 게 옳은지, 더 유지를 해 나가야 하는지 나도 어떤 결정이 나은 것인지 선뜻 결심이 서질 않는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 bdchu614, 출처 Unsplash


지금 가게가 있는 상가지역은 다행히 빈 상가가 몇 군데 없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상가 밀집 지역은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문을 닫고, 또 누군가는 희망을 품고 새롭게 오픈을 하고 있다.

지금도 임대중인 곳, 새롭게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곳,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구분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임대가 붙어 있는 빈 상가를 보면 누군가의 눈물이 떠오르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다른 누군가의 꿈이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창업이라는 희망과 기대감이 얼마나 유지될지 왠지 그 끝도 함께 생각나서 누군가의 시작을 순수하게 응원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거래처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내년 오늘에도 나는 문구점 아줌마로 살아남아 있을 수 있을까?

무작정 버티는 것만이 답일까?

어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금 이 매출 저조 현상이 우리 문구점에만 나타나는 현상인지, 아님 전반적으로 다 같은 현상인지 궁금해서 오랫동안 거래해 왔던 영등포 쪽 도매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사장님 말로는 그 사장님도 7,8월 역대 최저를 기록했는데 날씨 영향이 큰 것 같다 하셨다.

무인 문구가 새로 생기면 처음에는 아이들이 호기심에 빠져나가지만, 부업으로 하는 곳들이 많아 관리가 잘되지 않으면 영향이 크지 않다는 다른 거래처 사장님들의 경험담과 함께 응원과 격려의 말씀까지 전해 주셨다.

그뿐 아니라, 힘내라며 아이스크림케이크 쿠폰을 선물로 보내 주셨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다시 잠잠했던 마음에 파도가 일고 있다.

아니, 애초에 잠잠했던 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밀려오고 밀려가고 기세좋게 몰려왔다 흰거품으로 사라지는 파도....

늘 그렇게 파도는 내 삶에 일부분이기도 한 것을....


생각없이, 사는 대로 생각해왔던 지난 날들이 후회로 남는다.

너무 늦은 이제서야 생각대로 살기로 했으니....

아니다.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오늘은 내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이지 않은가!

그러니, 오늘 하루 나의 파도를 누려보기로 하자.


나는 이 파도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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