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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Sep 16. 2023

어떤 우연

살다 보면 참 신기하다 싶은 우연들을 몇 번쯤은 만나게 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에 작은 선물 같은 순간들로, 혹은 잊고 싶은 흑역사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조금은 특별하고, 이상한 우연들이 분명 내 삶에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겪은 일들이다.


지난 주말에 인천에 사는 여동생이 꽃게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큰 게는 찌고, 작은 게는 얼큰 시원한 찌개를 하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너무 배가 불러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집에서 나와 신호등을 건너기 위해 나무 밑을 지나갈 때였다.

툭. 투둑...

갑자기 어깨 쪽이 차가웠다.

뭐지? 하고 어깨를 본 순간 뭔가가 어깨에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세 곳이나.... 새똥이었다!


© borisworkshop, 출처 Unsplash


동생이 서둘러 근처에 있던 나뭇잎으로 대충 닦아 주었지만, 찜찜했다.

신호등을 건너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물로 처리를 하고 공원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러 나와 있었다.

동생과 수다를 떨며 유쾌한 산책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과일과 필요한 몇 가지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집에 들어왔더니 남편이 거실에 앉아서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뭐 하는가 봤더니 복권을 맞추고 있는 것이었다.

동생이 당첨된 거 있냐고 물어보았다.

남편이 5천 원짜리 3개가 됐다고 하는 거였다.


"헐~~ 나 새똥 세 군데 맞았는데!!! 이 새똥 하나가 5천 원짜리였던 건가?"

내 너스레에 동생도, 남편도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전 딸이 내게 카톡을 보내왔다.

"엄마, 신기한 일이 있어"

"뭔데? 말해 봐~"

딸은 서울에서 보컬 레슨을 하고 있다.

딸에게 노래를 배운 사람 중에 게임회사에 다니는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 회사의 게임에 들어갈 노래가 필요해 직원은 딸을 추천했고, 딸은 노래 데모를 그 회사로 보내 주었다.


며칠 후 대표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혹시 어머님이 평택에 사시냐고 물어보더란다. 깜짝 놀란 딸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자 대표님의 말씀은 이러했다.


대표님이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어떤 노래를 듣고 있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귀에 익어 이 노래 뭐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이 거래하는 평택 사장님 따님 노래라고 했다고 한다.

바로 우리 딸의 노래를 대표님 친구분이 듣고 있었고, 그 친구분은 나를 아는 분이셨던 거였다.

마침 데모를 받았던 대표님은 딸의 노래를 몇 번 들었던 터라 친구가 듣는 노래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기에 혹시나 하고 딸에게 어머님이 평택에 사시냐고 질문을 했던 거였다.


© clintmckoy, 출처 Unsplash


친구분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딸이 며칠 뒤에 노래를 하러 그 게임회사에 가니 그때 물어보겠다고 했다.

거래처라면 그다지 많지는 않은데, 난 어느 거래처 분들에게도 딸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궁금했던 그분의 정체가 며칠 후에 풀렸다. 그분의 정체는 바로 지난주 글에 소개해 드렸던, 나에게 아이스크림케이크를 선물해 주셨던 마음 따뜻한 거래처 사장님이셨다!! 

사장님도 너무 신기하다고 카톡을 보내오셨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세상은 그래서 넓고도 좁은 거였나 보다.

더욱 신기한 건 내가 사장님 이야기를 쓴 지난주만 해도 이런 인연으로 사장님과 연결될 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우연히 일어났던 일이 뭐가 있을까 글을 쓰느라 곰곰이 떠올려 봤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많은 우연이 스쳐간 일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딱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없었나 보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숨겨 놓았던 나의 부끄러운 과거가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그 일도 우연이라면 우연인 일이지 않을까?

아주아주 오래전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다. 40년도 더 된 기억이다.


그때 무슨 일인지 학교가 끝나고 친구가 살고 있는 신림동을 처음 가게 되었다. 

당시 나는 시흥동(금천구)에 살고 있었고, 학교는 신당동에 있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길을 지나고 있는데, 그곳에서 친정 아빠를 만난 거였다.

아빠는 당시 목수 일을 하고 계셨는데, 일하다 중간에 나오셨는지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마침 그때 그 근처에서 일을 하다 뭔가가 필요해서 어딜 가고 계시던 중에 정말 우연히도 나를 마주쳤던 거였다.

아빠는 깜짝 놀라며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친구네 집에 가는 중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그때 친구가 누구시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옆집 아저씨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나는 왜 아빠를 옆집 아저씨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었을까?

아빠의 허름한 작업복 차림이 친구에게 부끄러웠던 것일까?


그때 그 순간 처음 갔던 동네에서 하필 그 장소, 그 시간에 아빠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왜 당당하게 친구에게 우리 아빠라고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무려 40년도 넘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기억 한편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나의 죄책감이 그만큼 컸었나 보다.


© kelli_mcclintock, 출처 Unsplash


돌아가신지 햇수로 11년째!!

아직도 가끔 길에서 아빠와 비슷한 모습의 할아버지를 보면 울컥한다.

돌아가시고 나서 딱 한 번 꿈에 나왔지만, 어쩌면 그 후 한 번도 꿈에서조차 뵐 수가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40년 전 그때 신림동 거리로 돌아가서 우연히 만난 아빠를 친구에게 당당하게 소개해 주고 싶다. 우리 아빠라고....


세상에는 많은 우연들이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알아채든, 혹은 알아 채지 못하든....

많은 우연들이 모여 나의 삶을 이루고 있으리라.

신기하고, 아름답고, 조금은 부끄러운 나의 모습들이 그 우연에는 녹아 있고, 수 많은 우연들이 모여 그렇게 나의 삶이, 당신의 삶이 이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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