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천천히 오는지 나를 갈급하게 만들었던 가을이 비로소 그 자태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 가을의 시작은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날씨부터 시작일 터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을은 나뭇잎들이 푸르름을 벗어나 저마다의 색채를 뽐낼 때부터 가을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가을은 이제야 한 걸음 내게로 다가왔다.
사계절 중 단연코 가을이 나는 제일 좋다.
평범한 하루하루, 밋밋한 나의 삶에 자연이 주는 선물이 바로 가을이라는 계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을은 어디를 바라봐도, 어디에 있어도, 그 자체로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준다.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준다. 감동을 선사한다. 마음이 풍요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다.
나를 온통 찬란한 빛으로, 색으로, 서늘함과 따스함으로, 감미로우면서 애달프게 사로잡는 가을....
그래서, 나의 죽음의 계절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가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씩 한다.
나는 가을에 죽고 싶다....
내가 가을의 매력에 푹 빠져 사랑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의 나는 딱히 계절의 변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갈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가을....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졌기에 살아온 삶을, 뭔가 늘 불만스럽고, 힘겹고, 우울했던 나의 삶을 반추하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살아온 것은 다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매일 반복되는 나의 삶을....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의 삶이 그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음을, 살아 내려는 몸부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면서 가을이라는 계절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가을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단풍이 유명한 곳, 억새가 유명한 곳....
그곳에는 가을의 찬란함과 함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 온전히 나만의 가을을 느끼기 아쉬웠다.
지금은 굳이 가을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가을을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러면, 가을은 살포시 내게 다가온다.
그저 눈만 들면, 늘 가던 산책로에도, 도서관 가는 길에도, 출퇴근하는 가로수에도, 매일 올려다보는 하늘의 색도 그 속의 구름마저도 그렇게 온통 주변이 가을로 물들어 간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가을이다.
그래서 그 해가 어떤 해였던, 온전히 가을을 누리면 그 해는 잘 살아낸 그런 한 해가 된다.
지금까지 가을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하늘이 내게 준,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바로 가을이라는 계절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가을의 하루하루를, 한순간순간을 꽉 차게 느끼고 싶다.
그렇게 나의 행복을 가득 채우고 싶다.
나는 가을이 좋다.
그래서 가을에 죽고 싶기도 하지만, 이 가을을 맘껏 누리며 살고 싶다.
이제부터 시작될 자연의 경이로움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한 걸음 다가온 가을을 향해 나는 되도록 천천히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충만하게 가을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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