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야 하기에, 아이들이 등교한 뒤 가게 문을 잠그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을비에 따라온 바람은 서늘해서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햇살은 따스하게 나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가게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개울가를 지나, 작은 공원의 오르막길을 올랐다가 내려가면 신호등을 따로 건너지 않고도 도서관으로 갈 수가 있어, 나는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중간쯤에서 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으로 가는 길과 오른쪽으로 가는 산책로가 있고, 직선코스로 쭉 내려가면 가장 단거리로 도서관으로 갈 수가 있다. 왼쪽 길에는 주인 없는 신발이 몇 켤레 놓여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맨발로 걷기에 최적화된 산책로이기 때문이다. 내 신발도 언젠가는 저기 어디쯤 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서관 가는 길
그다지 높지 않은 오르막인데도 숨이 차다. 아, 이 저질 체력....
내리막을 만나 숨을 정돈하며 눈을 들면, 파란 하늘 아래 잔디가 깔린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애완견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 목줄을 매지 않은 강아지들이 주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윤슬이 빛나는 넓은 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그 저수지 옆으로는 능수버들이 몇 그루 멋들어지게 허리를 꺾고 있고, 한쪽에는 커다랗고 무성한 연잎 사이로 하얀 연꽃이 보인다. 그리고 그림 같은 아파트들이 빙 둘러서 있다.
평일 아침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달리거나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무 계단을 올라서면, 왼쪽으로는 물레방아가 계속 돌아가고, 그 물레방아를 지나면 지금은 가을이라고 알려 주기라도 하듯 넓은 벌판에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래, 맞아. 지금 가을이었지? 아직 가을 같지 않은 가을.... 아직은 설익은 가을....
나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 두 권을 더 빌려서 가게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목요일이다.
오랜만에 세 군데 거래처에서 물건이 한꺼번에 들어와 정신없이 정리를 했더니 벌써 밖이 어둑어둑했다.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목요일을 지냈었는데, 경기가 안 좋아진 지금은 오랜만의 바쁨이어서 좋았다.
오늘따라 웬일인지 중학생 아이들이 가게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오늘 시험이 끝났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직 어렸을 때의 얼굴이 남아있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자신들을 알아보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저 아시겠어요?"
"그럼~ 할머니랑 자주 왔었잖아~ 할머니 건강하시니?"
"네~~ 잘 계세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그 아이의 누나나 오빠, 가끔 같이 오시던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만큼 단골손님들 중 하나인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문구점에 올 일이 확 줄어든다.
근처에 살고 있는 아이들도 문구점 들르는 빈도가 줄어드는데, 초등학교 근처가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아이들이 구태여 여기까지 찾아올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학교가 여기서 한참 떨어져 있기도 하고....
그런데, 시험이 끝나 시간이 남자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와 준 아이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마음이 일렁였다.
작년 가을 풍경
이제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
아직 나뭇잎들은 여전히 푸르르지만, 곧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오랜만에 우리 문구점을 찾아와 준 아이들을 보며 나는 그만큼 나이 먹었겠구나 느껴졌다.
지금 아이들의 얼굴 위에 내가 그 애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통통한 볼살과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
나도 그 당시에는 눈 밑 주름이 없었을 테고, 손등에 몇 개 피어난 검버섯도 없었을 테지....
이 아이들이 몇 번의 가을을 보내며 성장 한 만큼, 나도 조금은 성장했을까?
나의 가을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올해는 또 어떤 색채와 감성으로 나를 사로잡을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