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지나가는 어제는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를 머금어 촉촉이 물든 단풍 속에서 특별한 한 쌍이 결혼식을 올렸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가진 한 쌍.
신부 나이 40세, 신랑 나이 44세.
그들에게는 각각의 다른 아픔이 있었다. 둘은 서로의 아픔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하기로 가족들, 친지들 앞에서 다짐을 했다.
단풍이 고은 비 오는 날 꼭 축하할 사람들만 모인 소규모 결혼식.
오히려 복작복작 시끄럽지 않아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결혼식이었다.
하객들이 있는 곳은 실내이고 신랑신부가 서 있는 곳은 야외로 되어 있는 독특한 결혼식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답답하지 않고, 가을의 멋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는 천정의 투명막 위로 투둑투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오색투명한 비눗방울이 어우러져 한층 운치 있게 느껴졌다.
보통 결혼식장에서는 사람이 많아 식사하면서도 쫓기듯 해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천천히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경관을 감상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여유를 즐길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이 한 쌍의 부부가 앞으로 영원히 행복하기를, 어제의 아픔은 다 털어 버리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빌어 본다.
결혼식이 끝난 후 근처를 한 바퀴 돌면서 가을 운치를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한 날이었다.
가을이 지나가는 오늘은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곱게 물들어 있던 나뭇잎들이 마구 흔들려 눈처럼 날아내린다.
위잉 위잉 성난 숨을 내뿜으며 바람이 성질을 마구 부린다.
출입문에 달린 도어 벨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바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지 연신 가게 문을 밀어댄다.
펄럭펄럭 거칠게 어닝을 뒤흔들더니, 기어코 벌컥 문을 열어 버렸다.
그 바람에 진열해 놓았던 물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도 했다.
바람에 쫓겨 들어온 아이들은 머리가 산발이 된 채 호흡마저 거칠다.
근처 상가에 놓여 있던 입간판이 쓰러지기도 하고, 길 위에 쓰레기들이 날아다니기도 한다.
이 미친바람이 지나가면서 가을까지 함께 데려가는 건 아닐까?
내일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올가을은 이렇게 다섯 걸음만에 끝나 버리는 것일까?
비와 바람이 지나간 가을 자락....
앙상한 나무들과 바닥에 떨어진 낙엽 더미는 그 나름대로 가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햇살은 따사롭고, 며칠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그야말로 말간 파란색 얼굴을 보여준다.
비바람에 떨어져 나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과 파란 하늘의 조화가 나름 어울린다.
쓸쓸하고 낭만적인, 겨울을 향해 걷는 가을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아이들은 차례대로 핫팩을 구매해 간다.
벌써 핫팩의 계절이 돌아왔다!
바닥에 무수히 깔린 낙엽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나뭇가지들....
한쪽에 있는 단풍나무들은 아직 초록색을 벗어내지 못한 채 그대로 말라간다.
같은 나무지만, 볕이 잘 드는 몇몇 잎들은 선홍색 빛깔을 자랑하고 있다.
그동안은 가을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설렜다면, 지금부터는 가을의 애잔함에, 그 쓸쓸함에 마음이 저릴 차례이다. 이 시기를 잘 보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붕 떠있던 마음이 땅굴을 파고 들어갈지도 모른다.
가을이 지나가는 오늘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슬픔과 고독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고독을 사랑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독에 관한 명언 몇 가지를 마음속에 새겨본다.
▷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
▷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고독을 선택한다.
▷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나다움이 없기 때문이며, 자기 내면이 궁핍하기 때문이며, 우리 인간이 단편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은 금광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가을 나도 고독을 사랑함으로써 자유를 얻고, 나아가 내면을 풍요롭게 채워 참다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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