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다

10월 1일

by 감성토끼

나는 길치이다.

요즘에야 네비가 있어 어디든 찾아갈 수 있지만, 네비 없던 시절의 나는 참 길을 많이 헤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특히, 덕수궁이 있는 서울시청 전철역만 들어가면 항상 길을 잃어버려 헤매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다 찾는 곳이 도저히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길을 지나는 분께 도움을 청하면, "바로 저 앞이에요" 세상에~ 목표물을 바로 코앞에 두고 항상 물어봤던 것 같다.


방금도 손님 한 분이 들어오셔서 종이 파일을 찾으셨다.

"지금 서 계신 그 안쪽으로 한 번 보세요~" 했더니 바로 앞에서 한참을 서 계시는 거였다.

그래서 손님 쪽으로 가려는 순간, "아, 여기 있네, 바로 앞에 두고 못 찾았네" 하셨다.

내가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더라고요" 했더니 웃으셨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어떤 문제를 코앞에 두고 있거나, 그 문제에 너무 빠져 있으면 오히려 보이지가 않아서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거리를 두고 제3자의 시선으로 그 문제를 들여다볼 때 무언가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 때는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다 보면 말을 하면서 자신의 문제가 정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나한테 종종 상담을 하곤 했었다.

말하기보다는 들어주길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커서는 딸아이의 고민을 가끔 상담받게 되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참견을 하게 된다.

그러면 딸이 "엄마, 내가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야~, 왜 엄마는 항상 해결을 해주려고 해?"이러는 게 아닌가!

그때 알게 되었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면 그냥 가만히 들어만 주어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하다 보면 그 고민이 객관화가 된다. 그러면 엄청 크게 생각했던 고민들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를 보기도 했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좋은 해결 방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남한테 말하는 게 조심스러울 때면 노트를 펴 놓고 글을 쓴다.

그 문제가 활자가 되어 노트에 펼쳐지면서 객관화가 이루어진다.


photo-1434030216411-0b793f4b4173.jpg © craftedbygc, 출처 Unsplash


한창 사춘기 때 일기를 생각해 보면, 엄청 염세적이고, 뭔가 불만에 가득 차 있고, 항상 안 좋은 일들만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분 좋을 때는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 너무 괴롭거나, 슬프거나, 속상하거나 이런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썼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생각해 보면 일기는 나에게 있어 친구와도 같은 거였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도 일기장에는 눈치 안보고 마음껏 끄적거릴 수 있었으니까.


사람과의 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친구나 가족과도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소홀해지고, 지치게 된다. 특히 연인 사이에는 잘 못하면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서로 약간의 적당한 거리를 지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

어디선가 일기를 쓰는 게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메타인지'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고 한다.


메타인지력은 뇌과학 분야의 용어로 기억. 사고. 기분 등 자신의 인지 활동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을 말한다. 메타인지력을 높이려면 스스로를 제3자의 시점에서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 중략 -
낭비가 없으면 돈이 모인다. 부자의 기본 원칙은 소비를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낭비를 줄이려면 뇌의 인지 왜곡을 자각해야 한다. 전전두엽이 담당하는 메타인지를 단련시키면 소비를 제어하는 방법을 습득해서 의미 있게 돈을 쓸 확률이 높아진다.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해서 보는 게 메타인지에 도움이 되고, 의미있게 돈을 쓸 수 있게도 된다니 흥미롭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연스럽게 메타인지적 관점을 익히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습관적으로 써왔던 일기 쓰기가 나를 객관화해서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혹시 요즘 마음이 복잡하고, 뭔가 자꾸 실타래처럼 엉키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차분히 글로 써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면 제3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 볼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생기고, 그 문제를 객관화 해서 볼 수 있는 생각의 눈이 열릴 것이다.


무엇이든 너무 가까우면 보이지 않는다.



<블로그 댓글 중>


- 맞아요!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걸 찾지 못하고 자꾸 헤매는 것 같아요.사람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가 이번 코로나 덕분에 느꼈잖아요^^

사람 사이에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글쓰기는내 마음을 제대로 보고 알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것 같아요

- 고민을 조근조근 말하다보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기도 하지요^^

그럴 사람이 없다면 차분히 글로 풀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요즘 글쓰기를 강조하는 책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데...

감성토끼님 글을 읽으니 정말 일기를 한번 써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화창한 가을 주말에 연휴까지.... 멋진 가을하늘과 함께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자기 객관화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일기로 간단하게 그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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