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향기를 타고 콩국수가 내게로 왔다.
여의도 진주집 냉콩국수
다시 만난 콩국수의 세계
콩국수가 싫다. 걸쭉한 국물 작은 입자가 사각거리는 콩물, 비릿한 콩의 향기까지 콩국수는 어른들의 입맛이 아니던가. 한껏 고소해진 콩물과 얼음물에 샤워하고 나온 차갑고 쫄깃한 소면의 대환장 컬래버레이션.
살랑바람이 불어도 아직은 봄을 붙잡고 싶은 오늘 같은 더운 날씨에 시원한 냉콩국수.
지금 먹으러 갑니다.
아빠는 여름 내내 콩국수를 즐겨 드셨다. 엄마는 찌는듯한 더위속에서도 콩을 삶고 믹서기에 곱게 갈아 소금 간을 해서 콩물을 만드셨다. 아빠는 엄마가 해주시는 맛있는 콩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고 호로록 면치기를 하며 담백한 콩의 매력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고소하게 한입 먹고, 빠알간 김치를 하얀 콩국수에 척 걸쳐서 또 한입. 어느새 뱃속으로 사라져 버린 콩국수를 아쉬워하며 내일을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더운 여름에 먹는 콩국수가 나는 별로였다. 멸치국수와 비빔국수파인 나에게 걸쭉한 무언가는 더위를 증폭시켰다. 점심으로 자주 등장했던 콩국수를 좋아할 겨를도 없이 슬쩍 미워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입맛도 변하나 보다.
친구가 약속장소로 보내준 여의도 진주집. 언젠가 들어봤던 맛집이었다. 처음에는 좀 고민을 하다가 냉큼 콩국수를 주문했다. 우리가 들어가고 순식간에 테이블이 가득 찼다. 조금만 늦었어도 한참을 기다렸어야 했겠다며 안도의 맛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이상하다. 여기가 맛집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나의 입맛이 변한 건가. 설탕을 솔솔 뿌려서 맛깔난 김치도 툭 올려놓고 뱅글뱅글 국수를 말아 입속으로 직행한다.
부드럽다. 고소하다. 면이 너무 탱글 거린다. 우와 이게 콩국수의 맛이구나. 생각보다 깔끔한 고소함에 반했다. 시간을 들이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정직한 맛이다.
아빠와 이별한 지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사무치게 그립거나 죽을 만큼 힘든 슬픔은 아니다.
아빠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보니 우리가 다 같이 콩국수를 먹던 그 짧았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뽀얀 블러처리가 되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간다. 조금만 더 선명했으면 좋겠는데 자세히 보려고 해 봐도 보이지가 않아 서글프다.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 좋겠는데 이미 사라져 버린 아빠.
마지막으로 꼭 잡아보던 손의 온기가 오늘의 날씨처럼 따뜻했다. 점심으로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 사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빠와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오늘이다.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들을 마주하는 시간.
괜찮아 지나갈 거야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