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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km 초록이와 구피의 대이동

by 여름의푸른색


배 타고 바다 건너 제주에 온 구피 가족




먼 길을 왔다. 소라게를 키우던 작은 수조에 구피와 물달팽이 그리고 초록 식물인 초록이를 데리고 왔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티맵으로 찍어봐도 대략 560km,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목포에서 제주로 넘어오는 배 안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준 우리 집 반려 식물과 구피 친구들.

이제 그들도 떳떳한 제주의 식물과 구피가 되었다.



구피를 처음 만난 날, 첫째가 1학년 여름방학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첫째의 친구 집에 있던 구피들이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테이크아웃 커피컵에 가득한 구피들과 빨대를 꽂는 구멍에 꽂혀있던 식물까지 생동감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소라게 두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 각각 한 마리씩 돌봐주고 있었는데 아뿔싸, 둘째의 소라게가 어느 날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다. 꼬박 한 달을 울었던 둘째, 그날 다짐했다. 더 이상 우리 집에 생명체는 들이지 않겠다고, 그럼 뭐 하나 이미 내 손에는 커피 대신 들어있는 구피들이 가득한데 말이다.




구피들을 어디에 키우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는데 큰 유리볼이 있어 구피 집으로 당첨, 푸릇한 식물과 물달팽이 친구들 전복 껍데기와 다이소에서 사 온 유리알 모양의 액세서리들을 같이 넣어 주었다. 유리볼이 투명해서 아이들이 오가면서 먹이를 주기도 구피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도감 만들기를 즐겨하는 첫째는 구피의 이름들과 특징을 잡아 예쁜 구피 도감을 만들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만 좀 귀찮으면 되는구나, 아이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하며 어쩌다 보니 첫째는 3학년이 되었고 다시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구피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아이를 낳고 또 낳고 또 낳았다. 친한 언니네에 몇 마리 분양을 해줬고 물고기를 좋아하던 언니네 집에는 근사한 어항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작았던 구피들이 새로운 집에서 잘 먹고 잘 자라 너무 커져있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 이 구피 우리 집에 있던 그 구피 맞아요? 정말 맞아요? 여러 번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구피가 이렇게 큰 물고기였나 싶을 만큼 커져있었다.




사실 이 구피 가족들이 가장 많이 분양을 간 곳은 우리 친정이다. 항암치료를 받으시던 아빠는 부쩍 야외활동이 줄어들어 무료한 일상이 계속되자 어항을 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구피를 키우기를 원하셨다. 망설임 없이 식물과 함께 구피들을 한가득 보내 드렸다. 정말 작은 새끼 십여 마리만 남겨두고 다 보냈다. 금방 또 불어나서 대가족을 이룰 것임에 틀림없으니깐. 친정으로 간 구피를 본 조카가 관심을 가지자 또 일부 친정 오빠네 집으로 갔다. 식물과 물달팽이는 언제나 세트다. 의외로 친정 오빠는 지극정성으로 물을 갈아주며 구피 키우기에 열심이었다고 들었다. 이로써 우리 집 구피 가족은 서울 부산 그리고 제주를 아우르는 전국구 가족이 되었다.




구피도 초록이도 의외로 너무 잘 자라 주었다. 식물도 여러 번 구피도 여러 번 분양했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꽉 차있는 구피매직!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혹시 차가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지만, 당당히 우리 집 반려 물고기로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지금은 제주의 삼다수를 마시고 있다.


구피야 아리수보다 삼다수가 더 맛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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