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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Sep 18. 2023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



뱅그르르 나침반의 바늘이 돌아간다.



어딘가에서 멈추겠지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지만 계속 돌기만 하는 바늘. 나는 그 바늘이 되어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어지럽게 돌고만 있다. 이제는 멈춰 서서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방이 바다인 섬에 갇힌 기분이다. 그러다 우연히 바늘이 멈췄다. 동서남북 중 적당한 지점에 천천히  정지했다. 빙글거리며 돌던 나의 바늘을 누군가 지그시 눌렀다. 이제는 멈춰도 된다고 그래도 된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이제 겨우 방향만 잡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산책을 나갔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 바람의 결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오래된 나뭇가지 끝에서 푸른색 리본이 바람에 살랑인다. 나는 푸른 이정표를 따라 길을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 모를 초록이 가득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돌담 위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낯선 나의 시선에도 피하지 않고 눈을 깜빡이며 인사를 한다.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누군의 시선도 피하지 않고 내 마음의 시선도 피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길모퉁이에 있는 아담한 집이 흐릿하게 보인다. 오렌지색 지붕 아래 베이지색 모자와 하얀 원피스 차림의 한 여자가 앉아있다. 이 길로 곧장 걸어오면 된다고 이 길은 안전한 길이라고 손짓하고 있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표정이 보인다. 살짝 흔들리는 눈빛과 담담하게 다문 입술 사이로 배어 나오는 느낌이 다정한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는 안전한 지붕아래 앉아서 도란도란 서로의 말을 나누어 가졌다. 그녀는 나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하늘의 색이 천천히 변했지만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 공간에 멈춰서 전원을 완전히 꺼두고 온전히 쉼을 가졌다.




나에게는 잔잔히 울리던 마음속의 피아노 소리가 있다. 그 소리는 어느새 변주곡이 되어 마음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제 예전의 음정을 찾아서 돌아갈 일은 없지만 새로운 음표를 만들어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잔잔한 음악은 아니지만 깊은 음악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천천히 나만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한 발을 내딛기 어려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햇빛의 손짓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부름을 반가이 여긴다. 지금은 어두운 터널일지라도 곧 예쁜 오솔길이 되어주리라. 




바람의 노래를 따라 꽃의 향기를  따라 풀잎에 맺혀있는 눈물방울을 따라서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향해 용기 있는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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