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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04. 2023

내가 좋아하는 주방 창가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은 주방의 창문이다. 이 창문은 주방에 비해 다소 작은 사이즈지만 그래서 액자 같은 풍경을 만들어 준다. 날씨가 맑은 날은 바람개비처럼 작게 보이는 풍력발전기와 가까이 보이는 푸릇한 논과 밭이 있다. 시야가 좋은 날은 저 멀리 바다 끝이 보이는 듯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날은 덩달아 기분이 좋다. 오늘처럼 청명한 가을 아침에 창을 보고 가만히 서 있으면 자연이 눈동자 속으로 따라 들어온다.

풍경화 한 장이 마음속 상자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고는 깃털처럼 가벼운 속도로 팔랑 거리며 내려앉는다.


팔-랑-팔-랑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지나면 오전의 따사로움을 따라 풍경의 농도는 더욱 짙어간다. 파랑은 더 깊은 파랑으로 초록은 더 짙은 초록이 된다. 하늘의 구름도 시시각각 변하고 하늘색과 하얀 구름의 조화도 꽤 다채롭다. 먼바다에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낸다. 슬프고 어지러웠던 시간들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물결 따라 흘려보내고 나면 맑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먼 거리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노을이 지면, 물감에 물을 더해 풀어놓은 듯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 단 하루도 같은 색의 노을은 없다. 여름밤의 노을은 핑크색으로 코랄색으로 때론 보라색으로도 변한다. 경이로운 색의 향연은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따뜻한 색채는 나를 감싸며 위로가 되어준다. 하늘 아래 내가 존재하는 사실이 감사하다. 함께 하늘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 순간만큼은 같은 마음이 되어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한순간도 놓치기 싫은 마음이다.




까만 밤이 찾아오고 아이들도 모두 잠든 시간. 다시 주방 창문 앞에 선다. 검은 융단 위에 노란 촛불이 떠 있다. 밤바다가 허락한 유일한 존재 배. 배는 어두운 바다를 밝히며 그 자체로 고요하고 따뜻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캄캄한 바다는 가까이 다가와 서서히 나를 물들인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노란 불빛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지금 창문 밖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서서히 나에게 스며들어 여러 가지 색을 남기고 있다. 내가 풍경화가 되는 시간.


나는 오늘도 주방 창가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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