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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15. 2023

귤 나무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제주로 온 지 4개월이 지났다. 주변이 온통 논과 밭이라 초록 작물들이 가득하다. 눈에 보이는 초록 작물들은 각기 다른 작물이겠지만 내가 보는 초록은 다 같은 초록이다. 볼 때마다 궁금하지만 도대체 어떤 작물이 자라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당근이나 고구마 양배추 같은 특정 식물들의 잎모양은 구별이 가능하지만 다른 작물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여름에는 집 가까이에 수박 농장이 있는 걸 수확을 하는 날 박스를 보며 알았고 근처의 레드키위 농장도 레드키위 수확철이 되고서야 현수막을 보고 알았다. 지천에 농작물이 널려 있지만 제주 4개월 차 초보에게는 여전히 아리송한 초록색 작물뿐이다.




그중에 단연 최고는 귤 나무다. 귤 나라인 제주에 당연히 귤 나무가 많겠지만 늦게까지 자리 잡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서야 귤 나무의 대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서귀포 쪽은 당연히 귤 농장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집 주변의 도로를 달리다 보니 초록의 절반 정도가 귤 나무다. 충격적이다. 5개월 동안 귤 나무를 이렇게 지나쳐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귤 나무도 초록, 귤도 초록색이라 전혀 구분이 되지를 않다가 서서히 열매의 초록색이 주황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매일 주황색이 점점 짙어지더니 오늘은 여기저기서 귤을 수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귤 나무에 가을이 내려앉자, 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주황색 브로치를 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달아서 멀리에서 보아도 탐스러운 귤이 눈에 들어왔다. 귤 나무에 여기저기 조금씩 귤이 달리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귤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나무 한 그루에 몇 박스도 나오겠는데?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귤 나무의 자태에 흠뻑 빠져 넋을 잃고 바라보기 일쑤다.




키는 아담한 나무인데 귤이 많이 매달려 있으니 귀엽다. 아기들도 키가 작을 때 제일 귀엽듯이 귤 나무도 낮은 키에 작은 주황 열매가 맺혀있는 게 앙증맞게 귀엽다. 그러다가 문득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요즘 귤나무 한 그루만 살까? 어디서 살 수 있지? 화분에 심어서 매일 보고 싶다며 귤 나무를 볼 때마다 즐거워한다. 나 역시도 거실에 귤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면 매일 주렁주렁 매달린 귤을 보며 귤멍을 하고 싶으니 말이다.



제주는 이미 크리스마스가 찾아온 듯하다. 12월이 되면 온통 크리스마스트리에 노란 조명이 켜지고 여기저기 불을 밝히듯, 지금 귤 나무에는 반짝이는 주황색 귤들이 가득하다. 트리는 밤에 빛나지만 귤 나무의 열매는 낮에 더 화려한 빛을 발산한다.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귤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시간이 보는 이에게도 미소를 전달한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귤이 가득한 가을. 초록과 대비되는 주황색 열매의 향연에 가을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살포시 내려앉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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