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51분. 잠에서 깨어 한 쪽 눈만 뜨고 휴대폰에 찍힌 시계를 확인했다. 이불 밖은 점점 위험해지는 계절인지라 따스함이 가득한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머리맡에 놓인 6권의 책 중에 가장 따끈따끈한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한 문장만으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이들이 깰까 봐 마크라메로 만든 작은 전등을 켜고 읽어 내려갔다.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글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다.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이야기를 따라 몸을 맡겼다. 마지막 장을 덮고 책날개에 적힌 '시간의 저 편에 남은 당신에게 안부를 전합니다'라는 글이 마음의 상자를 여미고 빨간 리본이 되어 독자의 마음을 예쁘게 묶어 포장해 주었다. 유난히 붉고 큰 리본이 비어있던 나의 마음을 꽉 채워준 시간이었다.
언니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들었다. 언니와 나는 학부형으로 만났다. 학교에서 마련해 주신 부모 강의를 듣고 마크라메 전등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마크라메 매듭은 얼마나 헷갈리던지 오른쪽 왼쪽 계속 버벅거리던 나와는 달리 맞은편에 있던 언니는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현란한 매듭을 샤샤샥 만들고 있었다. '금손.. 금손이다' 나는 혼자서 되뇌며 부러움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박미옥 형사님의 북토크에서였다. 나의 첫 북토크이자 인생 북토크라 자신하는 귤다방+박미옥 형사님+이연실 대표님+불멍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추억의 그날. 북토크가 열리는 '귤다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분주하게 북토크 준비를 하고 있는 언니를 만났다. 어엿한 책방 대표님의 모습으로 동분서주하시는 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후로 '강허달림' 콘서트도 같이 갔었고 귤다방에서 열리는 낭독회도 참여하게 되었다. 스세권 맥세권이 부럽지 않은 귤세권이라 참 좋았다.
어제는 귤다방에서 '큐브 그림책' 수업이 있어 오랜만에 귤다방에 갔다. 언니와 잠깐 인사를 나누고 "언니! 책! 책 어디 있어요!!" 내 책도 아니면서 나는 왜 그렇게 기뻤는지 모르겠다. 두 아이의 엄마로 책방 대표로 예쁜 귤 밭도 운영하시면서 언제 글을 쓰고 언제 책을 만드셨을까. 그동안의 노고를 함께 격려하고 축하하고 싶었다. 부끄러워하시는 언니에게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하는데~"하며 농담을 건네고 책에 사인을 받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제주에 막 도착한 김이 폴폴 나는 책을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거침없이 읽어내려갔다.
글은 선애라는 주인공을 따라 흘러간다. 책을 여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온전히 나는 선애가 되어 글을 읽었다. 아니 선애가 되어 내가 쓴 글을 내가 읽는 느낌이 들었다. 선애를 응원했다가 안타까워했다가 함께 슬퍼졌다. 선애는 단 하나의 인격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 만날 수 있는 여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애의 인생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온전히 느끼고 서서히 빠져나왔다. 자세한 내용을 쓸 수 없지만 거미줄처럼 엉켜서 흐릿했던 모든 것들이 선명해지며 책은 끝이 났다. 나는 작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읽고 싶었다. 책을 읽고 나니 뭉클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형체를 알 수 없는 동그랗고 말랑한 무언가가 마음을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