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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Oct 25. 2023

호오빵, 1년을 기다린 너

호빵의 계절

룰루랄라, 글쓰기 수업을 가는 날은 발걸음이 가볍다. 45분을 달려 동쪽으로 동쪽으로 드라이브를 떠난다. 6월에 제주에 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길을 따라 자연이 주는 그림 액자들도 시시각각 변한다. 푸르렀던 초록의 향연을 지나 무더운 짙은 녹음을 지나 매일 다른 예술을 창조하는 가을 하늘을 만났다. 자연에서 주는 그대로의 에너지를 가슴에 담는 일. 나의 몸과 마음을 그대로인 상태로 두는 일. 마음의 눈으로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보고 담는 일이 주는 밍밍한 기쁨이 있다. 사소함이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이 낙엽처럼 팔랑이며 마음을 두드리는 가을이다.




자기해방의 글쓰기 1기를 마치고 2기의 수업도 연달아 수강했다. 1기 멤버와 새로운 2기 멤버가 만나 우리는 다시 서로의 이야기를 조물조물 맛있게 버무린다. 각자가 쓴 초고에 에디터님의 첨삭을 더하고 합평을 하는데 이제 어색함이 사라진 우리는 서로의 글에 대해 객관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서로의 애정 어린 조언은 잘 메모해둔다. 내가 읽는 글과 다른 이가 읽는 나의 글은 달랐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불친절한 부분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풀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2기에는 요리를 하는 분도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무'이야기를 쓰셨다. 일본에서 지내다가 오신 멤버라 일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는데 어묵과 함께 먹는 뭉근히 익은 무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서 이 맛을 내는 분이 있다니 놀라움과 동시에 얼른 맛보고 싶었다. 무가 일품요리가 될 수 있음에 조각을 내어 한 입 베어 물면 사르르 뭉개지는 그 식감과 맥주의 조합! 분명 맛잘알이 틀림없었다. 두번째 음식은 양배추 롤! 롤캬베츠라 불리는 음식이다. 노래를 들으면 추억이 한꺼번에 소환되는 것처럼 음식과 추억 그리고 음식을 대하는 진심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2시간 30분 동안 머릿속을 동동 떠다니는 양배추 롤의 이미지가 수업을 끝나고 돌아오는 내내 식욕을 끌어올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간간이 보이는 편의점을 반가워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편의점 앞에 놓인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호오오빵'이라고 쓰여있었다. 호빵도 아닌 호오오빵. 가을을 지나고 있는데 벌써 호호 불어서 맛있게 먹는 호빵이 나올 계절이라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따끈한 호빵을 손에 들면 아기 엉덩이처럼 몽글하고 부드럽고 푹신한 하얀 덩어리가 만져진다. 손가락으로 쿡쿡 두어 번 눌러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인지 확인한다. 이미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몽롱한 세계로 나를 이끈다.

 

호빵 아래에 있는 종이를 슬며시 떼어낸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렇지 않으면 종이와 맞닿은 호빵의 살결이 대참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 잘 벗겨낸 종이를 한 번 접고 또 한 번 접어 작게 만들어 옆에 둔다. 호빵아 너의 마음을 보여줘! 호빵을 양손으로 가른다. 그리고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호빵의 자태를 잠시 감상한다. 속에서도 올라오는 김을 보니 오늘 호빵이 화가 많이 났나 보다. 검은 속에 살짝 멈칫했지만 그대로 한입 베어 문다. 편견을 걷어내는 달달한 호빵의 마음을 느낀다. 달콤한 앙금이 부드럽게 퍼지고 겉의 하얀 부분과 적절히 섞이며 얼어있던 나의 마음도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벌써 호빵의 계절이다. 사계절을 기다려 다시 만나게 된 호빵이 못내 반갑다. 호빵의 따뜻함이 나와 내 옆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호빵 한 줄을 쪄서 둘러앉은 가족들에게도 쌀쌀한 공기 속에 뜨끈한 정을 나눌 수 있게 만든다. 호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하나로 주위를 데우듯, 호빵 하나가 닿은 손을 지나 서로의 온도를 올려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쌀쌀해지는 가을, 손위에 작은 호빵 난로를 켜본다. 호빵의 도움을 받아 차가워진 나의 마음을 천천히 데워본다. 데워진 마음으로 또 다른 이에게 온도를 나누는 일과 함께.


오늘은 호빵이 성냥팔이 소녀로 환생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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