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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Dec 15. 2022

신데렐라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11년 차 부부의 다툼 없이 사는 법

“5분 남았네, 행운을 빌어”

“현관 비밀번호는 바꾸지 마.”

“헬기를 타던지, 퀵 오토바이를 타던지 5분 안에 현관 앞에 도착해야 해”

절대 12시를 넘기면 안 된다. 신데렐라처럼.

이건 둘만의 약속이다.





서울남자와 부산여자. 우리는 400km의 거리를 극복하고, 연애 3개월 만에 결혼식장에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서 살아보니 생각보다 쓸쓸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는데 유부녀라니. 너무나도 싱글로 돌아가고 싶었다. 게다가 홀로 모임에 나가는 남편을 볼 때마다 너무 밉살맞았다. 흥! 누구보다 신나게 놀 수 있는데!  내 마음은 홍대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짝이는 다이아반지를 보며 꾹꾹 눌러두었다. 정말 꼼짝없이 유부녀다. 눈치 없이 서울의 밤은 왜 이리 화려한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슬슬 걱정이 올라왔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과연 서울의 밤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었다. 전혀 자신이 없었다. 거스를 수 없는 장치가 필요했다. 사실 이건 남편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장치이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12시까지 집으로 돌아오는 신데렐라가 되기 시작했다.








삐삐삐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삐삐삐삐- 다시 눌러보아도 문은 닫혀있다. 당연하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꿨으니깐.

어? 당황한 남편의 목소리가 현관 밖에서 들려온다.

“지금 몇 시야?”

“12시 1분”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노래를 부르며 웃음을 참고 있는 나와 어이없는 상황에 다급해진 목소리

“비밀번호 바꿨어?”

“응”

그렇게 그는 밖에 서 있었다.  불쌍한 목소리로 계속 문을 두드리는 남편과 반대로 나는 안온했다. 물론 최선을 다해 달려왔을 그가 짠하기도 하지만 이건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 그렇다고 그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밖에서의 시간은 이 세상과는 또 다른 시계가 아니던가. 1시간이 1분 같은 느낌이라 몇 마디 안 했는데 금방 12시다. 그래도 그건 그의 사정이다.

"미안해, 열어줘 제발"

불쌍해진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져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약속을 받는다. 그는 두 손은 다소곳하게 모으고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처럼 내 앞에 서 있다. 모임에서 한껏 흥이 올랐었는지 빨개진 볼과 알코올 향이 거실을 가득 채운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와 민망하게 눈치를 보며 웃고 있는 모습이 좀 귀엽기까지 하다. 미친 게 확실하다. 아니면 콩깍지가 아직 벗겨지지 않았거나. 그가 슬쩍 커피를 내민다. 이건 뇌물이 분명하지만 기분 좋게 받아 든다. 다급한 상황에 커피까지 사 오다니 커피를 받아 들면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 확실하다.






그런 그도 부산에 가면 꼭 친정 부모님께 하소연을 한다.

"아버님! 12시는 너무합니다. 저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12시는 좀 너무하네. 시간을 좀 여유롭게 해 줘라. 남자가 사회생활하다 보면 늦을 수도 있고 그렇지. "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내 편은 없다. 사방이 적이다. 첫눈에 친정아빠에게 합격도장을 받고 사위가 된 그가 아빠는 내심 불쌍했나 보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다 같이 자유시간을 가지는 것.

"좋아! 그럼 내가 외출할 땐 새벽 4시까지 놀다가 올 거야. 그리고 절대 전화하지 마"

단호한 말투에 아빠도 엄마도 남편도 모두 서로의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적을 깨는 아빠의 한 마디.

"쟤는 나가면 진짜 전화를 안 받는다. 나는 모르겠네. 결혼했으니 이제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아버님!"

아무리 아버님을 불러봐도 소용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깐. 아쉽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거짓말 같지만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다. 우리에게도 보통의 부부처럼 고비는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약속을 지켜내려는 신데렐라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제는 신데렐라의 마법을 풀어주려 한다.


신데렐라 이제 넌 자유야!

그리고 나도.




사진출처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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