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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Jun 26. 2023

K-남자의 속사정


행복한 거 맞죠?



온갖 단어에 K가 붙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단어 중에 목과 어깨 동시에 힘을 줄 수 있는 K가 붙은 단어들이 있다. 전 세계에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는 K의 위상,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베이글을 먹다가 문득 떠오른 K-남자라는 단어.

K-남자, 

그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며칠 전 우연히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니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SNS에서 보던 그곳, 내가 가보고 싶던 바로 그곳.

런던베이글 뮤지엄!

서울에서도 새벽같이 줄을 서서 먹고, 연예인들도 많이 찾는다는 그 베이글 가게가 제주에 오픈을 한 것이다.


운전을 하던 남편에게


우리 저기 가야 해!

차 돌려? 지금?

아, 미안.. 다음에 꼭 가자고

저기가 어딘데?

있어 베이글이 엄청 유명한 곳!




주말은 관광객이 넘쳐나니 월요일 아침이 좋겠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으니 둘째 등원을 끝내고 출발하면 되겠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비가 그치고 맑아진 하늘. 기분까지 상쾌한 도로를 달려 갓 구운 맛있는  베이글을 먹으러 왔다. 남편은 진지하게 메뉴를 고르고 나는 콘텐츠에 쓸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쟁반과 집게를 들고 사진을 찍는 동안 기다려 주는 남편. 계산을 끝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통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남편은 수프와 커피가 있는 쟁반을 본인이 들겠다고 했다. 계단이 위험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베이글만 담긴 쟁반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좌석에 앉았다. 요리조리 사진을 찍기 바쁜 나를 대신해서 남편은 셀프 바에 가서 물과 필요한 식기들을 챙겨다 주었다. 그 시간에도 사진 찍기 바쁜 나.

핫플을 너무 오랜만에 왔구나. 남편도 나도.




베이글은 맛있었다.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느낌도 좋았다. 잠시 젊음을 만끽하며 베이글을 먹고 저 멀리 바다의 푸르름도 마음에 담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예쁜 20대 아가씨가 앉았다. 여자는 안자마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혼자 왔나? 하며 옆을 둘러보니 저 멀리 남편처럼 물과 식기를 한가득 챙겨 오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다소곳하게 앉아서 가만히 여자가 사진 찍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여자는 마음이 급한지 각도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바쁘게 사진을 찍더니 갑자기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남자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다했어?

응. 아니.. 기다리는 게 느껴져서


여자는 사진은 이만하면 됐다고 웃었다. 둘은 베이글을 맛있게 먹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그 남자, 나와 그 여자.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 모두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K-남자가 사는 방법인가.




월정리에 가면 바닷가에 예쁜 커플들이 많다. 여자들은 보통 바위 위에 올라가 포즈를 잡고, 멀리서 남자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여보, 저기 봐. 저 남자 진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찍어주네

그러네 요즘 남자는 사진도 잘 찍어야 되겠네. 다들 열심히 노력해야 결혼도 할 수 있고 그런 거야.


나는 방금, 이미 결혼에 골인한 여유 있는 남자의 표정을 보았다.


돈도 벌고 사진도 잘 찍어야 하고 핫플에서도 담담하게 기다려줄 수 있는 그런 남자.

사랑받아 마땅한 요즘 남자가 아닐까.



잘 나온 사진 한 장에 활짝 웃어 보이는 여자가 보인다.

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도 덩달아 미소를 띤다.




K-남자, 그들의 속사정이 궁금하지만, 잠시 묻어두기로 한다.


행복해 보이는 여자를 보고 행복하다면, 서로가 행복해지는 시간이라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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