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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푸른색 May 15. 2023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태국여행


풋풋했던 신혼 시절.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태국으로 패키지여행을 갔었다.

푹푹 찌는 찜통 속에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는 나의 호시절이었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부모님께 태국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비용은 우리가 지불할 테니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시라고 효녀 비스무리한 흉내도 냈던 것 같다.

동남아는 무엇보다 가성비가 아니던가. 저렴한 비용으로 네 식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앞에~ 있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한 자리에 두 분씩 버스에 타고

머리 젖습니다

옷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다 다 젖습니다

땀에 절어 물이 흘러내리는 여기는 방콕입니다~

아마존 익스프레스는 필요 없다. 인위적인 물이 아닌 진정한 즙이 온몸에서 흘러나왔다.


생쥐처럼 땀에 절어 사원을 오르기도 하고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서 프라이빗 비치에서 수영도 했다. 야시장에서는 즐거운 공연과 맥주를 마셨다. 패키지는 관광사이에 꼭 이상한 건물로 데려가 쇼핑을 시키는데 뭐,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어머님 아버님들이 물건을 한가득 구매하시는 모습에 살짝 놀라기는 했다.




패키지 특성상 여러 형태의 가족들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다들 눈인사만 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점점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여행 마지막 날.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는 중, 뒤쪽에 앉아계시던 어머님 한분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로 시작하는 누가 봐도 싸한 그 느낌.


"어머~ 며느리가 착하네 시댁이랑 같이 여행도 다니고

요즘 며느리들은 그런 거 싫어한다던데

참 좋으시겠네요."


아빠는 정말 뻥튀기처럼 웃음이 빵 터지셨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나.


"저.. 딸인데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해봐도 듣는 이가 없다.

다들 웃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낀 어머님은 점점 붉어지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다.


"근데.. 엄마랑 딸이랑 많이 안 닮았네요

사위랑 더 많이 닮아서 사위가 아들인 줄 알았어요."

나를 두 번 죽이시는구나. 확인사살.

그렇다. 나는 아빠를 닮았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형적인 우리 가문의 얼굴이라고 친척분들이 말씀하시던 게 어렴풋이 생각났다.

사우나처럼 습한 태국의 마지막 밤은 씁쓸하기만 했다.



사실 나는 시댁식구와 여행이 편해다.

그냥 잘 따라다니면 되는 막내아들의 아내 자리라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반주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아버님 짠~하실까요"

무뚝뚝한 아버님께 막걸리를 따라드리며

잔을 부딪히기만 하면 끝이다.


시누이의 건배사가 뒤따른다.

"잘하자!"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을 향한 딸의 마음이  묻어난다.

우리는 모두 힘차게 대답한다.

"네~~~"

흔치 않은 아버님의 미소를 보는 순간이다.

화기애애한 공기가 봄바람처럼 가족들 사이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영원하지 않을 이 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출처 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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