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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커피야!

12년 전 나를 다시 만난다면

by 여름의푸른색

나 이번주에 서울 가. 전시 보러 갈 거야.

친구의 연락을 받고 몽글몽글 해진 마음을 다독여본다.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하다 보니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12라는 숫자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피자를 한가득 시켜두고 청첩장을 돌리던 날.

"딱 10년 걸려 10년.

애 둘 키우잖아? 꼼짝없이 10년은 걸리더라고"

(차장님 10년이 뭐예요 12년이 지났지만 저에게는 아직 미취학 어린이가 한 명 더 남아있습니다.)

같은 팀 차장님께서 진지하게 말씀하셨지만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의 발랄함은 그 소리를 슬쩍 비켜 지나갈 뿐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의 질량을.






9호선 열차를 탔다. 그때나 지금이나 숨 막히는 지하철이지만 출근시간을 살짝 피했던 탓인지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 바로 옆 작은 공간에 익숙한 각도로 머리를 기대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잠시 엄마라는 옷을 벗고 일하던 나로 옷을 갈아입는다면 지금 가는 이곳이 아직도 나의 일터라면 어떨까? 살짝 떠올려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라며 위로해 본다. 온통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에 휩싸인 채 봉은사 역에 내렸다. 익숙한 공간과 달라진 나를 만나는 시간.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갈 곳을 잃은 동공만이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걸어 들어가는 순간 자연스레 그때의 내가 스며들어왔다. 미묘한 설렘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이곳. 이 모퉁이를 지나면 어디가 나오고 저 모퉁이를 지나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영화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신기한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A홀 입구에서 만나자"


친구에게 온 연락을 받고 B홀을 지나 A홀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의 우리가 만나 다시 전시장 입구에 섰다. 담담하지만 설레는 표현이 안 되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피 향 보다 먼저 코를 훅 치고 들어오는 것은 전시장 특유의 냄새였다. 그로 인해 소환되는 사람들과 기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당황해하는 나를 보던 친구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괜찮아, 나도 그랬어."


차분한 말투와 미소에 금방 긴장이 풀렸다. 부스와 부스사이를 지나며 이곳이 원래 이렇게 천고가 높고 넓었었나? 괜스레 두리번거리게 되는 고개가 나조차도 살짝 민망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아직도 여전히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와 묵직한 커피 향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전시장이 이내 친정집처럼 따스하게 다가왔다.





입구부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이 가득한 이 전시는 내게는 조금 특별했다. 결혼 전 마지막 전시라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 처음 시작하는 전시라 손도 많이 갔다. 대신 재밌는 기획도 포스터 사진도 sns 마케팅도 하나하나 손길이 닿아있어 자식처럼 애정이 가득했다. 1년 동안 곱게 키워 오픈하는 전시의 특성상 오픈 후에는 불꽃놀이를 관람하는 관람객의 마음으로 부스 하나하나를 돌아보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행복이 끓어오른다. 오픈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줄을 서고, 복작복작한 사람들 옆을 지나가면서 괜찮은 안도의 한숨을 지어내게 하는 곳, 생각해 보면 이곳은 꽤 즐거운 일터였다.




무전기를 옆구리에 끼고 킬힐을 신고도 이 넓은 전시장을 뛰어다니며 더없이 반짝이던 그때의 우리가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이곳에 서 있다. 나의 빛을 소멸시켜 예쁜 별 두 개씩을 만들어 손에 가득 담고서 말이다.


가만히 친구의 마음을 두드려본다.

그동안 뾰족한 별을 다듬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이 사랑스러운 별들이 빛날 차례야.

생각보다 행복한 시간들이 될 같아.

그때의 너와 나처럼.







사진출처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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