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엄마의 꿈과 사랑

by 닥애미

엄마도 꿈 많던 소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어린 소녀는 자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의 꿈과 사랑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엄마의 꿈과 사랑을 상상해 본다.


배움의 한


엄마는 삼남 삼녀 중 셋째이다.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지만 나에게 불만족스러운 외모를 물려주신 것만큼 미인은 아니다. -포장할 줄 모르는 딸의 엄마에의 투정이다.

엄마는 국민학교만 다니셨다. 외할아버지가 잘 사는 것도 아니었고 딸에 대한 차별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봇짐장사를 하셨다. 하루 종일을 이 동네 저 동네를 봇짐장사를 하시다 집에 돌아오시면 그렇게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셨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삶도 팍팍해서였겠지...

엄마가 만약 대학교 아니 고등학교까지만 나왔더라도 엄마는 엄청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 뒤 엄마는 대전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거기서 '야학'을 하셨다고 한다. 공부하면서 신학생의 꿈을 꾸셨다는 엄마는 목사 사모님이 되는 게 꿈이 셨다고 한다. 막내가 그 꿈을 이뤄드렸으니 여한은 없으시겠지... 신학대 입학을 위한 공부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도에서 포기하셨다는데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엄마에게는 그 시절이 화양연화의 때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조금은 들떠있다. 즐거움이 묻어난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던 아쉬움도 깊게 베여있다. 그것이 엄마를 작아지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학력은 자꾸만 엄마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엄마에게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만약 지금이라도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이젠 눈도 잘 안 보이고 자꾸만 잊으신다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하긴 학력이 중요한 게 아닌 데 엄마는 그보다 중요한 인생의 지혜를 갖고 있다. 나의 주관적인 평가이지만 위대한 학자보다 그 어떤 전문가보다 엄마는 지혜롭다. 그래서 딸들의 인생의 참된 선생이 되어 주고 있다. 엄마의 삶 자체가 우리에겐 큰 울림이 되니까!

'엄마 너무 속상해하지 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엄마가 제일 똑똑하다고!'



엄마의 친구


엄마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나와는 반대로 친구들이 많다. 재작년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밤늦게 까지 엄마와 대화를 했다.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엄마와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난생처음으로 한 인간 대 인간으로 엄마 바라볼 수 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자식에게도 말 못 할 것들을 터놓는 친구는 몇 명이 되지 않는다고... 엄마의 가장 가까운 친구 분은 어릴 때부터 한동네 살던 서울에 사는 정순이 아줌마이다. 가족보다 찐한 육 십년지기 친구가 있는 엄마가 부럽다.

그리고 엄마의 방직 공장 시절 친구들이 있다. 그중에 엄마가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분이 계시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그 친구를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의 남동생이 졸업했던 학교의 동문회에 수소문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엄마가 시집을 간 후 얼마 뒤 친구분은 엄마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엄마가 시집간 동네로 편지를 썼다고 한다. 누가 엄마를 안다면 내 친구 영순이에게 편지를 꼭 전달해달라는 절절한 부탁과 함께 말이다. 엄마는 몇 달 뒤 그 편지를 전달받게 되었고 편지를 손에 쥐고 얼마나 애달팠을까? 친구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셨겠지. 그 뒤 간간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엄마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고 얼마 뒤 친구의 연락처를 잃어버리셨다고 한다.

"엄마 왜 그런 걸 잘 챙겨 놓지 않은 거야!"


그렇게 소중한 친구사이였다면서 엄마는 왜 친구의 손을 놓아 버렸던 걸까?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연호야! 미안해 내 삶이 너무 힘들어서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겠니?'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꼭 그분을 찾아 드리고 싶었는데 사십여 년의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엄마는 왜 이렇게 뒤늦게 그 친구의 이야기를 꺼내셨을까?

아마도 그 친구분이 날이 가면 갈수록 그립기 때문이겠지 그리움은 쌓이는 거니까!


-70년대 말 철도청에 근무하던 남편과 결혼해서 서울에 사시 던 53년생 ○연호님을 찾습니다. -


엄마의 일기


'엄마가 일기를 쓰셨네?'

한창 집안에서 말질을 즐기던 나는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엄마의 일기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일기장 표지에 '그날이 오면'이라고 적혀있었다. '뭔가 시적인데!' 하며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지 살짝 기대가 되었다.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나는 엄마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엄마의 일기장은 책갈피마다 단풍잎, 낙엽, 꽃잎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거기에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가 있었다. 뭔가 로맨틱한 내용을 기대했는데 아빠에 대한 엄마의 서운한 마음이 남겨져 있었다. 어느 시점 이후로 일기는 끊겨있었다. 일기를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걸까? 귀찮아 지신 걸까? 이제 엄마의 일기장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글로 써내려 진 엄마의 감정들은 무겁고 슬픈 느낌이었다. 겉으로는 편안하게 보였던 엄마였는데 낯선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어린 내가 감당할 수 없었던 감정이었기에 나는 얼른 엄마의 일기를 닫고 제자리에 두었다.

'난 이렇게 좋은데 엄마는 왜 이렇게 썼지? 난 아빠가 좋은데...."


나도 한때 일기를 썼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나의 현실을 인정하기 두려웠다. 그래서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생각하기를 멈춰버린 것이다. 곱씹을수록 아팠기 때문이다.



엄마의 앨범


엄마의 처녀시절 앨범은 지금도 잘 보관되어 있다. 나의 학창 시절에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이었는데 엄마의 앨범도 엄마만의 감성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일기장과 마찬가지 단풍잎, 나뭇잎, 꽃잎 있었고 잡지에서 오려낸 태현실, 김자옥 같은 그 시절 인기 연예인 사진도 장식물로 사용되었다. 사진 아래에는 하나하나 사진에 대한 설명과 또는 시구들이 쓰여 있었다. '정순이와 함께', '누구누구 결혼식에서' '불국사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같은 내용으로 말이다. 낡어버린 앨범 안에는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은 엄마의 사진들이 있다. 엄마는 그때 아셨을까? 이런 못난이 딸을 낳게 되실 거란 것을... 엄마의 사진에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들 긴 단발머리에 나팔바지를 입고 가지런히 어깨를 포개고 찍은 단체 사진들이다. 독사진으로는 등산 사진도 있고 여행 가서 찍은 사진들도 있고 사진 속 엄마는 하나같이 젊고 예쁘기만 하다. 젊음 하나만으로도 아름답다. 우리는 종종 엄마와 함께 사진첩을 펼치며 추억놀이를 한다.

"엄마이건 누구야?"

"응 엄마 친구! 애랑 애랑 결혼했어!"

"이건 어디서 찍은 거야?"

"친구들하고 여행 가서 찍었어!"

사진을 설명하며 그때를 회상하는 엄마의 표정은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엄마 근데 엄마 얼굴은 이때도 동그랗네!"



엄마의 사랑


엄마에게도 첫사랑이 있었겠지! 엄마도 사랑을 했었을 거니까. 내가 아는 엄마의 사랑이라곤 아빠와 엄마의 사랑인데 두 분이 서로 사랑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어릴 때 상상했던 결혼이란 왕자와 공주의 사랑의 결과로 생각했기에 엄마와 아빠는 서로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다. 아이는 그런 환상을 품는 존재이니까...

아빠와 엄마의 두 번째 만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빠가 엄마 동네에 자전거를 타고 한 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찾아왔었다고 한다. 아빠가 그랬다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아빠가 엄마를 찾아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경험했던 사랑의 감정을 엄마도 느꼈겠지? 미우나 고우나 아빠와 엄마는 부부였으니까! 삶이란 이렇게 엄마에서 딸로 딸에서 그 딸로 이어져 비슷한 삶이 반복된다.

엄마에게 돌아가신 아빠 말고 다른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 혹시 남자 친구 없어?"

"없어! 무슨 남자 친구야!"

"그럼 누가 대시한 적도 없고?"

"응 한 번도 없어, 엄마는 이상하게 남자들이 안 붙더라."

"엄마가 너무 씩씩하니가 그렇지! 좀 약한 척도 해야 남자들이 붙지!"

하며 씩씩하게 말하는 내가 있다.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만약 엄마에게 다시금 봄날이 찾아온다면 제발 좋은 인연이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 사랑이 많고 그것을 표현하는 남자로 말이다. 물론 엄마는 절대로 필요 없다고 한다.


엄마의 마지막 꿈


엄마는 말했다. 잠자듯 죽고 싶다고...


딸들도 다 여의고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며 엄마는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말했다.

'하'

마음이 무너진다.

"엄마 그런 소리 하지 마! 나 화날라 그런다."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없는데 잘 사는 것을 보여드린 적도 없는데 엄마는 이별을 서두르는 듯하다.


그래 만약 엄마가 떠난다 해도 나는 붙잡을 용기가 없다. 현재 내가 엄마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뭐라고 하고 싶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비참한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엄마도 고단하겠지, 이젠 쉬고 싶겠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몸뚱이 하나로 여태 잘 버텨 온 것이겠지...

'떠나지 마 엄마! 나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엄마를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어. 엄마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한 글자 한 글자 눈물 투성이야.

실패 투성이 딸내미의 마음을 담아 보기 했거든.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작은 희망을 향해달려가는 날 위해서라도! 조금만!'


나의 꿈이 엄마의 꿈이 되도록 난 노력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임을 아니까. 확률도 없는 게임에 도전장을 내밀고 세상이 바보 같은 나를 비웃더라도 엄마를 위한 글을 쓰는 나의 마음은 녹지 않을 거니까... 내가 엄마의 짐이 아닌 꿈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엄마의 꿈을 도울 수 있도록 나는 울면서도 걸어간다. 한 걸음씩...

'엄마 그러니까 조금만 나와 같이 걸어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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