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계란밥

6번째 단어

by 블루챔버

지금의 아빠는 요리도 많이 하고, 설거지도 많이 하고, 집안일 참여도가 꽤 높은 편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의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본인 밥은 스스로 챙겨드셨다. 아빠가 배가 고플 때는 조용히 혼자 김치와 고추장, 참기름을 냉장고에서 꺼내 와서 하얀 밥에 샥샥 비벼서 드시곤 했는데,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그 시절 먹방이란 게 없었던 게 한이다. 있었다면 조회수가 엄청나게 많이 나왔을 텐데.

중학교 때였던가, 할머니가 크게 아프셔서 엄마가 간병하러 시골로 내려가시게 된 동안 아빠가 아침식사를 차려주었다. 나랑 남동생은 원래도 반찬투정이 없는 편이라 주는 대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밥을 다 먹어갈 때쯤 나는 보고야 말았다. 치사하게 아빠 혼자 밥그릇 바닥에 계란을 깔아놓은 것이 아닌가! 반숙이 된 노른자가 톡 터지면서 위에 올라온 하얀 쌀밥과 비벼져 노오란 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야 만 것이다. 아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숟가락 떠서 맛있게 드셨다. 그때의 배신감이란!

배신감에 사무친 나는 그 뒤로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아빠에게 이야기한다. 20년도 더 지났는데도 계속 아빠한테 말한다.


“아빠 그때 얼마나 치사했는지 알아? 혼자 계란을 밑에 깔고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말이야~”


그 배신감의 대가는 혹독했다. 아빠는 그 한 번의 실수로 인해 20년 넘게 딸에게서 잔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 또 글 쓰다보니 열받는다. 이따 아빠한테 전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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