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억기록

유붕자원방래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by Blue 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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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글을 쓰다가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청운의 뜻을 품고(?) 건축 유학을 와서 시카고에서 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이제 이곳은 내가 태어나 가장 오래 머문 도시가 되었다.


낯선 외국에서의 유학생활, 당시 매년 4-6명의 신입생들이 건축전공으로 들어왔고, 비슷한 목적으로 온 학교에서 만난 한국친구들과는 그래서 좀 더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 같고 계속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이 가고 있다.

물론 다들 나이 들어 만난 관계라 대부분은 사회적인 관계로 이어지면서 나의 삶과 비교하는 관계로 남게 되지만 몇몇 사람들은 마치 고등학교 때 친구들 같은 유대감을 느끼는 관계들도 있다.


그런 친구 하나가 주말에 집에 방문해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보다 몇 년 뒤에 미국에 와서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다가 그 친구는 미국 여러 도시를 거쳐 지금은 LA에서 일하고 있다.

나보다 연락되는 사람들이 많아 유학을 했을 때 앞뒤 시기의 사람들과 같은 직장에 다녔던 사람들의 현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건축유학에 뜻을 갖고 온사람들 대부분은 박사학위 취득보다는 석사 후 취직을 해서 경력을 쌓고 미국건축사를 따는 것을 생각하며 온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경기에 민감한 직업군이라 졸업시기에 미국의 경제상황에 그들의 취업의 확률을 결정되게 된다. 2-3년의 시간인지만 입학 때 졸업하는 사람들의 취업분위기가 자신이 졸업할 때의 분위기와는 상관이 없고 매년 졸업시기마다 달라진다. 그럼에도 항상 앞에 졸업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입학할 때는 보통정도의 취업률이었다가 내가 졸업하기 전 해에는 거의 모두 취업을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고, 내가 졸업할 때 즈음 조금 나아지는 시기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나의 취직 소식이 남아있던 친구들에게는 큰 희망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때 유학을 했던 친구들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다.

1.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

2. 미국에 남아 설계사무소에 들어간 사람

3. 건축을 접고 다른 전공/사업을 하는 사람


하나하나 잘 생각나지 않는 이름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대학교수로 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미국에 남아 건축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디자인을 한다고 하는 회사에 남아 있는 건 정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벌이 남자 가장의 모습과 맞벌이 여자 가장 속 남자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외국생활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 친구가 내게 귀한 존재란 생각이 들었고 나 스스로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을 서로에게 '그래 우리 잘살고 있어, 잘 살고 있는 거야'로 마무리하면서

유학동기이자 나와 동갑이었고 정말 많은 것이 비슷했던 그래서 한국에서 첫 만남에 둘이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던 평생을 연락하며 지낼 것 같았던, 하지만 졸업 후 어느 날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두환이가 생각나는 밤이었다.


그리고 이성이던 동성이던 나는 두 명으로 대화할 때를 좋아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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