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아이들의 봄방학으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주일 여행을 갔다.
이제 다 큰 애들이라 더 이상 짐꾼으로서의 내가 필요하지 않았고 나 또한 새로 들어온 회사에서 장기간 휴가를 내기가 부담되어 나한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계획해서 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주중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저녁에 설거지 거리가 없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된다는 것, 집에는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릴 강아지가 있어서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지만, 남은 저녁시간은 주로 인터넷을 하며 보냈던 것 같다.
결혼 후 처음 주어진 시간이었지만 강아지를 이유로 홈캠과 전화로 여전히 관리되고 있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을 했다.
처음 캠핑을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다가오면서 가기 전과 갔다 와서의 시간들이 귀찮게 생각되어 시들해졌고, 금요일 왠지 아쉬워 예전 직장 동료와 저녁을 먹었다. 내가 나온 뒤의 회사이야기, 그리고 내가 지금 다니는 새로운 회사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그 친구와 더 많은 것들을 하려고 했으나 취향이 맞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어 짧은 저녁으로 끝을 내고 돌아왔고, 토요일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거리다가, 지금 일요일, 혼자 평소에 가지 못했던 곳을 가보려 하고 있다. 이제 하루남은 이 시간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사람과의 만남이 너무 오랜만이었고, 잊고 있었던 '만남뒤에 오는 소모감?'을 느꼈던 것 같다. 'I'성향으로 말들 하던데, 공감되지 않는 사람과 만나고 나면, 과음을 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느끼는 숙취 속의 허탈함? 같은 것이 밀려온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혼자 해야겠단 생각을 했고, 그래도 오랜만에 나아닌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이 말을 보고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다.
정신이 붕괴되는 순간은 '바쁠 때'가 아니다. 진짜 무너지는 순간은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는지 알 수 없을 때'이다.
바쁜 것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 바쁨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방향을 읽고 지쳐버린다.
그러니 단순히 열심히가 아니라,
왜 하는 자, 어디로 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말로 들어 왔다.
그리고, 현실도피가 아닌 나의 미래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현실에 허덕이며 '바쁘게'만 살고 있는 내게
작은 쉼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남은 하루
잘 보내야겠다.